한국일보

“고장난 냉동고”

2005-1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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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칼럼/송철웅 목사<헤브론교회>

월요일 새벽은 나에게 다른 날보다는 조금 늦장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화요일 부 터는 새벽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일찍 일어나 성도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교회 안이 따뜻하게 데워질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그러다 주일이 지나고 나면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동안 밀렸던 잠을 월요일 새벽 몇 시간을 더 보충함으로 채워간다.
그런데 오늘은 월요일 새벽인데도 아내 가 유난히 소란을 떤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는 사람인데 원 호들갑인가? 조금은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차고에 있는 냉동고가 고장이나 아이들 학교 가기 전 먹여야 할 음식들이 다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차고에 들어가는 순간 생선 비린내와 고기 부패한 역겨운 냄새가 아직도 잠이 덜 깬 내 코를 강하게 자극하였다. 그 동안 새로 입당한 교회건물의 뒷마무리를 하느라 나도 아내도 너무 분주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집안의 냉동고가 수일 전부터 고장 나 있는 것도 모르다 부엌 냉장고에 남아있던 아이들의 음식이 다 떨어지자 오늘에야 드디어 아내가 새벽에 차고에 나갔다가 기겁을 하고 달려온 것이다.
냉동고를 열고 다 녹아서 허물거리는 음식들을 조사해보니 그 동안 알뜰하게 모아놓은 아내의 정성이 갸륵하다. 녹아서 줄줄 흐르는 생굴, 새우, 피자박스, 치킨, 축 늘어진 꼴뜨기 , 그 형님 벌되는 오징어, 그 형님 벌되는 문어까지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저장했는데 모두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뿐인가? 그토록 내가 좋아하던 돼지고기 삼겹살, 소고기 등심은 누가 찌르지도 않았는데 피를 줄줄 흘리며 시커멓게 변해 버렸고. . 마른 멸치, 마름 김까지 그 썩은 피에 범법이 되어 쓰레기 감이 되어버렸다. 크게 숨을 몰아 쉬고, 그 냄새 난 보물단지들을 갈베지 백에 터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담아놓고 수요일 날 아침에 올 쓰레기차만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다.
지금까지는 저들이 우리가정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우리 가정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귀한 것들이었지만 그 음식을 먹으면서도 별로 감사를 느끼지 못하다가 다 썩어 버리고 나니 참으로 아깝고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새우 한 백이 우리 집 냉동고에 들어오기까지 그 새우가 태어나 자라게 하시고, 기르시고, 땀 흘리는 어부의 손길을 통하여, 손질하는 아줌마들의 수고를 통하여, 유통하는 아저씨들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에게까지 음식으로 허락하신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집의 냉동고 하나를 채워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것, 땅에 것, 하늘에 속한 모든 것까지 온 우주를 동원하셨고, 쌀 한 톨이 내 입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사뭇 가슴에 사무친다.
인생이 별것인가? 하나님의 냉동고에 들어있는 음식물과 같은 것이 아닌가?
내 인생에 하나님의 전류가 흐르고 있을 때 우리는 싱싱하고,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가 되지만 하나님의 전류가 꺼져버리면 견디기 힘든 악취가 풍겨나기 시작하고 버리기도 힘든 주인의 근심과 고통거리가 되지 않는가?
오, 주님! 인생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고, 악취를 풍길 수 있는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항상 우리가 깨끗하고 싱싱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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