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의 혼, 정화수

2005-11-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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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필계를 이끌어 가는 중진작가 한분이 얼마전 LA를 다녀갔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뒤를 잇는 우리 나라 서정 수필의 1인자로 인정받는 정목일 수필가인데 바쁜 일정 가운데도 이곳 문인들과 여행을 함께 했고 필자는 출간한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따근따근한 그 분의 새 에세이집, ‘한국의 아름다움 77가지’를 직접 서명까지 곁들여 받는 행운을 가졌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말했듯이 외래 문물에 휩쓸려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요즈음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알고 민족의 영혼과 전통,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삶 속에서 체득했던 지혜와 미의식을 알아보자는 의도로 펴내게 되었다. 아울러 학생과 해외동포들에게 한국의 영혼과 뿌리를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없는 보람이며 기쁨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에세이집에는 돗자리, 소반, 반닫이, 인두와 장독대, 판소리, 탈춤, 문방사우, 정자 그리고 단청, 부적, 삼신, 태몽 등 오래동안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왔던 77가지의 물품과 멋 그리고 정신을 담고 있는데 자칫 딱딱하고 밋밋하기 쉬운 내용들을 예의 수려한 문체로 편안하고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아직 책을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읽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정화수’였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불현듯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외할머니께서 도맡아하시다가 나중에는 어머니가 이어 받으셨는데 집안에 좋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특히 우리 4남매가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른 새벽 언제 일어나셨는지 조그만 밥상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올려놓고 촛불을 밝힌 후 정갈한 자세로 열심히 치성을 드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 뚜렷한 종교를 갖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누구를 향해 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어머니께서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던 절대자에게 간구한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내 자신은 그 모두가 쓸 데없는 미신이라고 무시하면서도 하도 지극하셨던 정성에 어느새 그 기대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런 어머니의 치성이 어찌 필자의 집에만 있었겠는가. 방법만 다르다 뿐이지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이 보편적으로 가졌던 생활의식이었다. 지금 60~70대 이상의 한국 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헌신적이었을 뿐 아니라 수시로 옳고 그름을 일깨워줘서 자녀들은 삶속에서 저절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분별력을 익히며 자랐다.
그런 가정교육 때문에 그들의 자녀, 소위 386세대들은 아무리 민주화를 위해 싸울 때라도 독재의 편에 섰던 미국에게 그 은공만은 저버리지 않았으며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김일성 집단을 지지하거나 자유민주체제를 부정하는 망언만은 떠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간세대가 저지른 가장 큰 과오는 어머니처럼 자식들을 바로 훈육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데모를 일삼느라 배우지 못해 무지해졌는지 아니면 입시 지옥이 안쓰러워 너무 응석받이를 시켜서 그런지 어떻게 자녀들을 전후좌우도 가리지 못하며 자라게 방치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날 한국의 학생들과 젊은이들로 야기되는 많은 혼란상태를 보면 이성과 상식 그리고 염치의 한계를 넘은 것 같을 때가 많다. 정의가 실종되고 가치관이 바로 서지 못하며 최소한의 도덕률마저 찾을 수 없는 세상이 어찌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을 잘못 가르치면 당사자의 가정적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속한 국가와 민족에 커다란 해독을 끼치게 됨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신세대 엄마들은 어머니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 자기들에게 어떤 점수를 매길지 알 바 없으나 자녀들이 지금의 젊은이들 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를 원한다면 먼저 가정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야 할 것이다.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엄마들은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했다는, 이제는 한갓 전설이 되어 버린 그 정화수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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