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 요란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2005-11-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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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호목사(헌츠빌침례교회)

뒤뜰의 숲 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가장 요란할 때는 하루 중에 동이 터 올 때이다. 밤새 어둠 속에서 볼 수 없어 잠잠해야 했던 모든 새들이 보는 것으로 살아있음의 능력과 기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분별 할 수가 없어 죽은 것처럼 지낸다. 몸이 아파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것들이 사랑하는 이들인지 적인지도 분별할 수 없어 불안하게 침묵을 지켜야만 하였다. 그러나 동녘에서 밝은 빛이 떠오르니 날아 갈 수 있는 길, 장애물, 먹이, 자신을 먹이로 만들려는 적들, 사랑을 나눌 친구들과 아름다운 세계가 보인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던 새들이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어디 이뿐이랴! 아름다운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할 일들을 말하느라 요란하게 지저귀는 것임이 틀림이 없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에는 활동을 멈추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그리고 잘 보이는 아침이 되면 수많은 말들과 함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세계도 있지만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세계가 있다. 이 마음의 눈이 떠지면 떠질수록 작은 것에서나, 큰 것에서나, 유명한 것에서나, 이름 없는 것에서나 똑같이 있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즐기게 된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던지 신비와 아름다움의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 길가에 핀 작은 야생화의 꽃잎에서나, 나이야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에 있는 신비와 아름다움의 가치는 같으나 단지 모양과 크기만이 다름을 안다.


따라서 마음의 눈이 떠진 자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세계를 감격하며 즐기며 산다. 그러나 마음의 빛이 없는 이들은 크고 유명한 것에서만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즐기려 한다. 그래서 희귀하고 크고 유명한 것만을 쫓아다니지만 그 욕구를 채울 수 없으니 슬픈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크고 희귀하고 유명한 것으로 나의 욕망을 취하였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허무함과 시시함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비와 아름다움에 목말라하는 슬픔을 맛보아야 한다.또한 마음의 눈을 뜨면 나를 사랑하는 목소리와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목소리도 분별이 된다. 때문에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하며 사랑의 품으로 인도 받으며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빛이 없는 자들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간사스런 립 서비스를 쫓아 슬픈 미래를 만들기도 한다. 더욱이 마음에 빛이 있는 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늘 본다. 그래서 무엇이 자신을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삶으로 인도 받게 된다. 이런 가운데 자신은 겸손하게 낮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인격이 성숙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음의 눈을 뜬 자와 뜨지 못한 자의 차이는 생명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이다. 그리고 이것은 빛에 사는 자와 어둠에 사는 자의 차이이며 신앙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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