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핵심은 ‘누가 하느냐’다
2005-11-08 (화)
백악관 지하에 비밀 터널이 있다. 대통령 비밀 경호팀을 제외하면 백악관 직원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터널의 한 끝은 백악관과 이웃한 재무부 청사 지하로 닿는다. 원래는 옛 소련과의 핵전쟁에 대비한 대피 시설이었으나, 백악관 주인에 따라 그 용도가 바뀌어 왔다.
한마디로 대통령들의 ‘숨겨 놓은 여인들’이 출입하던 비밀 통로다. 여인들은 백악관 경호원과 취재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단 재무부 건물 앞에서 하차해서 비밀 터널을 통해 백악관의 ‘오벌 룸’(대통령 집무실)을 노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릿 저널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로널드 케슬러의 저서 ‘백악관 내부’(Inside the White House)에 등장하는 취재 비화다.
비밀 터널을 제일 잘 활용한 대통령으로 린든 존슨 대통령이 꼽혀 있다.
그가 터널을 통해 불러들인 여인들 상당수가 대통령 직속 여비서로 채용됐으며 “8명의 여비서 가운데 5명이 존슨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한번은 오벌 룸의 정사 장면을 부인 버드 여사가 목격해서 백악관이 난리를 치른 적도 있다. 이후 오벌 룸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에 비상벨이 가설됐고 경호원은 버드 여사 모습이 나타나기 무섭게 벨을 눌러 존슨에게 기별했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 백악관 터널 대신 동생 로버트가 장관직을 맡고 있던 법무부 청사를 활용했다. 청사 5층과 6층 사이의 다락에 장관 전용 침실을 마련, 형 대통령과 마릴린 먼로와의 정사 장소로 이용됐다고 적혀 있다. 더 놀라운 건 동생 로버트 역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먼로와 놀아났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책 ‘백악관 내부’가 발간된 시점이다. 클린턴이 재선되고 1년쯤 됐을 무렵으로, 인턴 여대생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한창 도마 위에 올라서던 때다.
이 책은 케네디, 존슨 등 역대 대통령의 혼외정사도 푸짐하게 다루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 기실 노리는 건 클린턴의 음행을 정조준해서 재선 첫 해를 맞춰 클린턴의 성 모럴에 강력한 응징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미 역대 재선 대통령들에게는 재집권 첫 해(햇수로는 5년 째)가 최대 위기다. 지금의 부시도 그 틀에서 못 벗어난다.
재선 대통령의 경우 집권 5년이 되면 참을 수 없이 터지고 마는 이 현상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번 특집에서 마릴린 먼로가 출연했던 영화 ‘7년만의 외출’(The Seven-Year Itch)의 제목을 본 따, 역대 재선 대통령이 겪는 ‘5년만의 외출’로 희화하고 있다. 여기서 Itch의 정확한 뜻은 우리 해석대로 외출보다는, 일본판 제목처럼 ‘7년만의 浮氣(바람기)’가 더 적절할 성싶다. 아무리 참아도 결국에는 터지고 마는 대통령의 숙명적인 바람기.
부시는 재집권 첫해를 맞아 마이어스 대법관 지명과 철회를 둘러싼 맹공과 부통령 비서실장의 기소, 이라크 문제,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의 실패, 치솟는 유가 등으로 시달려 자신의 지지도가 40%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뜬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여기서 뉴스위크의 이번 특집에 박수가 쳐짐은 아무리 숙명적인 5년만의 바람기라지만 지혜로운 대통령이라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2기는 힘들지만 성공 사례도 있다”는 친절한 제목까지 달고 그 밑에 루즈벨트가 자신만이 히틀러와 제국주의 일본의 고조되는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국민을 설득, 유례가 없는 3차 임기집권에 성공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레이건은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 함께 냉전을 종식시킴으로써 이란-콘트라 추문의 족쇄에서 벗어났고, 클린턴 역시 르윈스키 추문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미 역사상 최장기간의 경제 성장이 자신 때문에 가능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잘 알려져 있듯 명문 워싱턴포스트의 자매지다. 어쩌면 그리도 예쁜 특집을 기획하는지, 또 특집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에 걸 맞는 대안 제시에도 그토록 관대한지 궁금해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www.washingtonpost.com)를 두드린 즉 해답이 바로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경쟁 주간지 US뉴스 &월드 리포트에서 발탁한 올 44세의 캐롤라인 리틀 여사를 얼마 전에 뉴스위크 발행인으로 전격 임명했던 것이다. 언론이든 나라든 문제는 똑같다. 누가 하느냐이다.
김승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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