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짱한 기자가 없다는 건가?
2005-10-25 (화)
뉴욕타임스 사옥 정면에 걸린 시계에는 타임스라고만 씌어 있다. 뉴욕에서는 굳이 뉴욕타임스라 부르지 않고 그냥 타임스라 불러도 통한다. 한마디로 신문(Times)을 대변하는 신문임을 자부하는 것이다.
사옥 정면의 시계 바늘이 나타내는 시각은 그리고 보면 바로 미국 신문의 시각이자 미국 사회의 시각이다. 지금 미국 사회는 몇 시 몇 분인지, 미국 언론은 지금 몇 시에 놓여 있으며, 그 언론이 재는 이 시대의 눈금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또 우리는 이 시대 자체에 기대를 걸어도 되는지…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시간」이라는 명함을 내밀어 내방객을 맞는다.
훌륭한 신문이 보통신문과 다른 점은 딱 한 가지다. 뛰어난 기자들을 많이 두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서 뛰어나다는 말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신문이 낳은 대기자 고 제임스 레스턴의 뛰어남은 그의 돋보이는 특종이나 필력에 있지 않았고 세상을 들여다봤던 그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각에 있었다.
그러나 레스턴이 정작 사랑하고 감사히 여긴 것은 뉴욕 타임스였다. 기자가 자기가 소속한 신문을 사랑하게 만드는 신문, 뉴욕타임스는 한 마디로 이런 신문이다.
90년대 말 뉴욕타임스를 방문했을 때 진 로버츠 당시 편집국장이 건네주는 뉴욕타임스 요람을 펼친즉, 미국 기자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퓰리처상을 탄 이 신문 기자가 레스턴(2회 수상)을 포함해서 69명에 달했다. 이 상이 시작되고 거의 매년 뉴욕타임스에서 수상자가 나왔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서 레스턴급 기자 수 십 명이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신문이라는 얘기인데, 더욱 놀랐던 건 이 중엔 뉴욕타임스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로 올라 수상한 것이 9번에 달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인격을 지닌 신문이다.
창업주 아돌프 옥스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인색하기로 따져 세계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문을 만드는 데는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다른 신문과 이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이 점, 지금도 전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반드시 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 신문들은 대통령 기자회견을 요약해서 싣는다. 뉴욕타임스는 다르다. 전부를 그대로 싣는다. 지면을 남겨 광고수입을 늘리는 관행을 이 신문은 일찍부터 버렸다. 합중국 대통령의 연설이 지니는 기록성 때문이다.
창업주 옥스는 1차대전 당시 하루 60행 이상의 광고는 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광고 수입도 좋지만 전쟁 뉴스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의 사위 아더 헤이즈 설즈버거 발행인(지금 발행인의 조부)때에 와서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다른 경쟁 지보다 연간 3백 만행이 더 많았다. 그만큼의 광고료를 포기한 것이다. 이 전통 역시 지금에도 계속된다. 바로 이 점이 뉴욕타임스의 다른 점이다.
백악관 출입기자 시절 공보담당자한테 직접 확인한 바, 당시 68부의 뉴욕타임스가 매일 백악관에 배부되고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경우 매일 이 신문 지면의 3분의 2를 읽지 않고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온다. 워싱턴 지역 뉴스에 관한한 경쟁지인 워싱턴 포스트한테 눌릴지 모른다는 인식을 깨려는 듯 당시 워싱턴 지국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는 타임스 기자 숫자만 정확히 49명이었다. 최고만을 추구해 온 창업 정신의 연속이다. 어찌 보면 대단한 콧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콧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미화되는 이상 업종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 저널리즘을 뉴욕타임스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서울은 맥아더 동상 철거 시비로 아수라장에 빠져있다. 철거시비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이상야릇한 발언과 관련된 구속수사 시비로, 거기서 다시 검찰총장 해임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며칠 전 모 언론사는 내게 맥아더 동상 철거 찬반 중 어느 편에 서는지를 묻더니, 한쪽 편을 골라 글을 써달라고 집필 요청을 해왔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 그 기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여보! 이게 도대체 토론대상이 되는 거요?”
시대가 구약 사사기 말미에 나오는 “사람마다 제 멋대로 하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우리에겐 이를 잡아 줄 짱짱한 신문, 짱짱한 기자가 없다는 건가? 뉴욕타임스의 소개 글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울화통을 삭힌다.
김승웅
한국재외동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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