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풍과 인생

2005-10-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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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린 단풍으로 물이 든다. 물론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의 단풍은 싱겁기 짝이 없지만 옛적에 살았던 동부의 단풍은 그야말로 혼을 쏙 빼앗아갈 정도로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단풍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말하면 기온변화에 따른 나뭇잎의 색소변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저 평범한 상식으로 말하면 나뭇잎의 수명이 다하여 색깔이 바래지고 떨어져 낙엽이 되는 나뭇잎의 소멸과정이다. 이처럼 단풍이란 따지고 보면 죽음의 서곡인데도 왜 사람들은 단풍을 찬양하는가? 아마도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 돋아나올 새싹을 예고하기 때문이리라. 생명력이 없는 아름다움이란 본질적으로 단조롭고 메마른 것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가? 단풍은 병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늙음이다. 낙엽은 떨어진 죽은 이파리인데도 왜 추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기의 할 일을 다 하고 떨어진 나뭇잎의 자태이기에 그러하리라. 싱싱할 때 꺾은 나뭇잎의 모습은 푸른 젊음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풍이 겨울의 목전에서 아름답듯이 인생도 황혼에 아름다운 것이다. 나무가 자기 몸의 변화에 따라 늙어가며 처음의 싱싱함을 잃었는데도 아름다운 것 같이 사람이 늙어 피부의 싱싱함을 잃고 몸의 윤기와 색깔을 잃었다고 해서 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풍의 색깔변화는 엄격히 말해서 나뭇잎이 병든 모습이다. 그러나 단풍은 아름답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이다. 병든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면 가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다.
단풍과 낙엽은 나무 생명의 절정이듯 사람의 병듦과 늙음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석양에 물든 하늘처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낙엽을 태우며 그 냄새에 정취를 느끼듯 몸을 태워 가루로 흩어 뿌려져도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색깔을 인정하는 것이다.
병들거나 장애가 된 몸도 아름다울 수 있고 그리고 늙음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의 정의를 누가 내렸는가? 아름다운 몸의 정의를 팽팽한 피부와 쭉쭉빵빵의 몸매로 규정한 세상의 가치에 세뇌가 되어버려 그 가치관에 노예가 되어버린 이후 사람의 참 행복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자기의 모습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욕되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무가 싹이나서 자라며 꽃을 피우며 과일을 맺고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으로 떨어질 때 그 모든 모습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모든 과정의 모습들이 다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처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인생의 이치라면 장애를 입고 원치 않는 삶을 살더라도 그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단풍은 말해 준다.


김홍덕
조이 장애선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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