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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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자와 잃은 자

2005-10-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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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권오수, 박연희 부부에게 차라리 잊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들은 1992년 4월29일에 일어난 LA 폭동으로 사업체를 송두리째 잃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밸리지역으로 옮겨 새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겨우 자리가 잡혀가던 1994년 1월 17일 그곳을 엄습한 강진으로 두번째 피해를 입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버텨왔지만 더 이상 앞날이 보이지 않자 2004년 새로운 꿈을 찾아 뉴올리언스로 재차 이주하여 세탁소를 차렸다. 다행히 사업전망이 밝아 태풍 이틀 전에는 많은 돈을 들여 보일러를 새 것으로 교체까지 하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천재지변은 일순간에 그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들 부부의 지독한 불운은 이세용, 최복순 부부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세용씨 내외는 도시 외곽에서 제법 큰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8월4일 두명의 10대 강도가 들어와 부모를 돕기 위해 등교길에 먼저 와서 잠시 가게를 돌보고 있던 26세의 착한 딸을 살해하고 돈을 강탈해 갔으며 보름 뒤인 8월 29일에는 미증유의 허리케인으로 가게는 침수되고 대형 간판과 건물은 폐허처럼 파괴되었다. 그들두 가정의 재앙은 피해지역에 살던 많은 한인동포들이 겪은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
이희정씨는 LA에서 프리렌서 미용사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가 3년전 그동안 올라간 집가치를 담보로 융자를 받아 집 한 채를 더 사서 세를 주었다. 그후 집값이 계속 상승하니까 그녀는 새집에서 에퀴티론을 얻어 또 다른 집을 사는데 다운페이 하고 그리고 다시 그 집으로 론을 받아 다른 집을 사서 세주고 그런 과정을 몇번 되풀이 했더니 지금은 자신이 사는 집을 포함해서 모두 5채의 주택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경제문제에는 정말 문외한이고 전문가가 보기에도 매우 무모한 방법으로 집들을 사들였으니 연일 치솟는 주택 값과 저이자 융자 덕분에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큰 재산을 이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이 너나없이 재미를 보고 있다. 필자의 주택도 2년사이 거의 두 배가량 뛰어 그동안 이민 와서 저축한 돈 보다 더 많이 번 셈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9.11사태 이후 오를 줄 모르는 주식들을 다 처분해서 한,두채 더 사놨으면 은퇴걱정 하지 않고 노후를 편안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주택시장이 바닥을 쳤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부류의 사람들은 겉으로만 비교할 때는 엄청난 격차가 난다. 불의의 재난을 당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패배자며 손쉽게 치부한 사람은 많은 것을 얻은 성공자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행운과 불운, 성공과 실패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뒤바뀔 수 있는 사안이며 또한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되어지는 일이다. 얻은 자와 잃은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했을 때 너무 기뻐하거나 자만에 빠지지 말고 늘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비록 실패했다 할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좌절치 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꿈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물질적, 육체적 어려움이 발생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죄 때문에 생겨난 일이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종교나 인권 또는 정치나 전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연재해일 뿐이다.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거나 내 자신을 자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허리케인 속에서 각자에게 주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도록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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