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The Navajo Code 와 The Korea Code

2005-10-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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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황택구(화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며칠 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사면서 코드 인식(code 認識)이란 게 서로를 알아보는 인간관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산대 전산기가 바코드(bar code)를 판독하지 못하면 가격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캐숴가 매뉴얼 작동으로 바코드 숫자들을 컴퓨터에 입력해야 가격이 나옵니다. 계산대 전산기가 코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서로간에 마땅히 상통해야 하는 암호(暗號)가 통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인간관계에 비유하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는 얘기겠지요. 다시 말해서 코드가 맞지 않거나 불통하는 관계는 불신관계를 의미합니다.

군 작전지역에서 암호 불통은 일단 적으로 간주합니다. 어렸을 적 기억입니다. 6.25 당시 내가 살았던 변산반도 산골마을은 사흘이 멀다하고 밤손님(공비)들의 약탈에 시달렸습니다. 밤손님들이 내려오면 으레 마을 주변 초소에서 경계하는 방위경찰들과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매일 초저녁께 초소에서 불침번을 서는 동네 어른들에게 인근 경찰지서(警察支署)로부터 새로운 암호가 시달됐습니다.“부엉이 참새 “미꾸라지 등등 그런 단어들이었습니다.“누구냐? 암호? .... 대답이 없거나 암호가 틀리면 즉시 발포합니다. 우리 옆 동네에서는 불침번을 교대하러 오던 동네사람이 깜박 당일 암호를 잊고 며칠 전 암호를 뎄다가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군 작전암호(軍 作戰暗號)는 적군이 판독(判讀)하지 못하도록 난해도(難解度)가 아주 높아야 합니다. 적군이 암호를 깨게되면 작전은 실패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난해하다 할지라도 암호판독전문가들은 웬만하면 풀어내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수 년 전에 상영된 ‘Windtalker’ 라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사이판 전투(Battle of Saipan)에서 큰 공훈을 세운‘The Navajo Code’를 주제로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미군은 일본 도쿄를 공격하자면 작전상 우선 먼저 일본군이 마지노 선(Magino線)으로 고수하려하는 북태평양 마리아나(Mariana)제도 중의 콩알만한 섬 하나인 사이판을 점령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일본군의 저항은 결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작전암호를 한 자도 판독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패배하고 맙니다. 미군은 나바호어(Navajo語)와 영어를 동시에 정확히 번역하도록 철저히 훈련시킨 나바호 인디언(Navajo Indian) 통신병들을 사이판 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입니다. 애리조나 지역에선가 차출한 원주민 인디언 나바호족 통신병들은 최전방과 후방 지휘본부와 통신할 때는 나바호어를 사용하고 영어로 ! 동시 번역한 수신내용은 즉시 지휘관에게 넘겨졌습니다. 일본군은 미군의 통신을 모조리 수신했습니다만 영어 아닌 아주 괴상한 언어 나바호 코드를 풀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The Navajo Code’는 적에게 단 한 번도 깨져본(broken) 적 없는 가장 강력한 군 암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코드가 통하지 않으면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진실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물론 신뢰감도 생기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의도가 도무지 무슨 꿍꿍이 수작인지 헤아릴 방도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부모와 자식들 간에 코드가 맞지 않을 경우 집안은 늘 불화의 소음으로 시끄럽습니다. 부부 사이도 마음의 코드가 잘 통해야 화목하기 마련입니다. 궁합(宮合)이 맞는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코드가 맞는다는 이치와 같을 맥락입니다. 대기업의 성패(成敗) 역시 노사간의 코드가 얼마나 잘 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정부와 국민과의 신뢰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국민과 정부(집권자) 사이에 서로 코드가 맞지 않으면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는 여론과 분위기가 조성될 것은 강 건너 불 보기입니다. 요즘 한국의 국론분열(國論分裂)이 바로 그런 실정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코드가 대다수 국민들과 잘 맞지 않아서 탈이라는 말입니다. 인식하기가 아주 난해한 노무현 참여정부 코드가 국민들과 정부 사이의 의사소통은 물론 감정소통까지 두절시킨다는 불만여론이 매우 지배적입니다. 자기네들 끼리끼리만 통하는 코드가 과연 누구를 위한, ! 무엇을 위한 코드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불평입니다. 선장과 항해사만 알고 선창(船倉)에 갇힌 승객들은 도대체 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꼴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코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자주 왕래하는 지인 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10년 아니 당장 5년 후부터가 걱정이라는 한입소리입니다. 국론분열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넓혀지는 형국(形局)이라고 합니다. 국론분열이 얼마나 악화돼 가면 맥아더 동상이 남북통일에 장애가 된다는 그런 옹졸하고 유치한 발상 따위가 나라를 시끄럽게 하겠습니까. 노무현 참여정부가 지난 3년 동안 국내외 대한민국 국민 모두와 정부가 거침없이 통하는 ‘The Korea Code’보다 ‘끼리끼리 코드’ 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나는 주장합니다. 행정수도 분산이전이니, 과거청산이니, 뭐니뭐니 다 접어두고 우선 먼저 시급히 서둘러야 할 것은 국내외 국론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The Korea Code’ 조성입니다. 국내외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결집되면 개혁도 저절로, 경제성장도 저절로, 과거청산도 저절로, 남북통일도 저절로 이뤄지리라는 게 나의 지론(持論)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한국국민 아니고는 절대 broken 시킬 수 없는 영구적인 ‘The Korea Code’야! 말로 장차 대한민국을 강국으로 지켜나갈 가장 강력한 보이지 않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금강석처럼 값지고 강인한 ‘The Korea Code’가 시급히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끝) <2005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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