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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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문화

2005-10-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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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와 국경을 접한 동부 콩고에 있는 키브 호수 안에 위지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서 사는 수천명의 사람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처참하고 혹독한 가난속에 살고 있다. 전기는 물론 없고 식수도 없다. 문명의 이기라고는 그림자도 없이 살고 있다. 몇 년전 한인 단기 선교단원들이 이 섬을 방문한 후 선교보고가 있었다. 단원들은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신발이 없이 사는 것을 무척 가슴아파 하였다. 사람들이 신발을 신지 않아 상처 난 퉁퉁 부운 발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신발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다.
나중에 들은 소식은 이듬해에 한국 사람들이 수천 켤레의 플래스틱 샌들을 사서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그후 르완다와 콩고 사이에 전쟁으로 신발 없이 위지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식을 더 이상 듣지 못하였다.
지난 여름 르완다에 갔을 때 고아원을 방문하였다. 열살부터 열여섯 살되는 소년들이 창고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창고 앞마당에 돌 몇개를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놓은 곳을 부엌이라고 소개하였다. 컴컴한 창고 안에는 더러운 헌 매트리스들이 깔려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매트리스 없이 시멘트 바닥에서 잔다고 했다.
함께 동행한 한국 사람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을 지적하며 고아원에 50켤레의 신발을 사서 주자고 제안하였다. 참 좋은 생각이라 나도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고아원 원장에게 우리들의 결정을 알려주었다. 원장은 고아들에게 신발을 사주는 성의는 고맙지만 신발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매트리스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우리 일행은 통역을 통해 원장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쌀하고 콩”이 라고 하였다. 아이들이 평생 신을 신어 보지 않았기에 신발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고 하였다. 신발보다 더 필요한 것이 많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저녁을 굶은 채 자는 밤이 허다하다고 말하였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쌀과 콩을 사들고 고아원을 다시 방문하였다. 소년들은 너무도 좋아하였다.
지난주 어느 아침에 나는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현관 근처에 신발이 보이지 않아 나는 맨발로 걸어 나갔다. 신문을 들고 들어오는데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나의 맨발을 지적하였다. 그 순간 나는 신발에 관한 세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견해는 신발이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열대지역에서는 신발을 한번도 신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항상 맨발로 다녀 그들의 발바닥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두 번째 견해는 신발을 항상 신는다는 것이다. 나는 신발을 신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신발에 진흙이나 더러운 것이 묻었을 경우에나 신발을 벗지 그 이외에는 신발을 신고 집으로 들어온다.
세 번째 견해는 밖에서는 신발을 신고 집안서는 신발을 벗는다. 이것이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들의 습관이다. 이러한 습관은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집안은 신성한 공간이기에 신발을 신으면 모욕적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직도 이 신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방문할 때 우리는 적당히 눈감아 주지만, 우리 식구들끼리는 세 번째 견해인 한국 풍습을 대부분 지키는 셈이다.
나는 이제야 위지 섬에서 한인 단기 선교사들이 느꼈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세 번째 견해를 가진 한국사람들이 첫 번째 견해를 가진 아프리카 사람들을 접한 것이다. 전기나 펌프보다, 개화된 사람들은 신발을 밖에서 신고 안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견해이다. 만약 위지 섬에 있는 사람들이 개화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신발을 소유하여야 할 것이고 이와 같은 풍습을 따라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야 나의 아내의 못마땅한 표정을 이해하겠다. “신발을 신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미개인이나 한다”하는 그런 표정을 이제야 알겠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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