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글날을 기억하자

2005-10-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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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국에서 교직에 있을 때는 10월이 상달이었다. 민속에서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으로 10월을 이르는 말 그대로 한국문화를 즐기는 계절이었다. 3일의 개천절, 9일의 한글날, 24일의 유엔 데이가 모두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10월은 ‘문화의 달’이라고 불릴 만 했다. 문화는 무엇이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가.
문화와 문명은 다르다. 문화가 정신적인 것이라면 문명은 물질적인 것이다. 문화가 개성이 뚜렷한 특성을 지녔다면 문명은 누구나 즐기고 이용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문화는 삶의 기쁨과 깊이를 주며 문명은 삶의 편리함을 준다. 문화는 사랑하고 가꾸지 않으면 자연 소멸한다. 문명은 계속적으로 발명 의욕을 충전하지 않으면 침체현상을 보인다.
문화와 문명은 인류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쌍두마차이며 이 두 가지는 똑같이 창의력을 원동력으로 한다.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지적에 따르면 쇠 젓갈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손가락이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데 이는 것은 문화를 말한다. 이 실험 과정이나 결과를 컴퓨터로 집계 분석하는 것은 문명의 힘이라고 본다.
세계 각처의 생활양식이 다양한 것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이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문명의 혜택이다.
‘문화의 달’이라고 할 만큼 즐거웠던 상달이 오간 데가 희미해진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 중심에 있던 ‘한글날’이 빛을 잃은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밀려난 것은 경제 원리 때문이라고 들었다. 내년이면 한글 창제 60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이 날은 국보 제 1급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미국 생활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것 중의 하나는 ‘한글’에 대한 감사이다. 어느 곳에나 독특한 언어생활이 있고 그 것을 기술하는 글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생각이 옳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언어에 따르는 글자의 수효가 턱없이 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글자를 대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글이 있어 행복하다. ‘한글’이란 큰 글, 훌륭한 글, 하나밖에 없는 글, 한국 고유의 글이라는 뜻이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훈민정음’이라 하셨음은 ‘백성에게 올바른 소리를 가르치기 위한 글자’라는 뜻이다. 한글은 위대한 창작품이고 한국문화의 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역사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눈뫼 허 웅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오천 년을 살아오면서 과연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지고 교육을 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느냐? 교육은 나라 발전의 근본인데 그 근본인 교육을 우리는 남의 글과 사상만 죽자고 배웠다’고.
미국 각처의 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에서 한국어반 개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정규 과목으로 어떤 곳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하고 있다. 미국뿐이 아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말과 한글을 배우려는 열기가 일고 있다. 잘못하면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모르는 한국 2세가 한국말과 글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객이 바뀌는 일이 생기면 되겠는가. 이 책임은 부모의 몫인 줄 안다. 무엇으로 2세들이 정체성을 가지게 할 것인가.
우리가 쉴 새 없이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잊듯이 한국말·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는 줄 안다. 정보기술 발달에 크게 공헌하여 더욱 빛나는 한글의 장점에 놀라며 말만 있고 글자가 없어서 소멸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수출 상품으로 최상의 것이 한글이란 생각을 한다. 한글은 틀림없이 ‘한글’의 뜻을 지니고 있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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