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은 내가 정하는 것

2005-09-25 (일)
크게 작게
“이 달 말에 가게를 닫기로 했어. 리스도 마침 그 때 끝나 다행이야. 그나마 3년 계약하길 얼마나 잘 했는지 몰라.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 좀 싼 데로 새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건강도 좋지 않아 몇 달째 정기적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가 가게마저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한숨 한 점 없이 일상의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맑은 목소리로. 중간 중간 웃음까지 섞어가며.
어느 날 갑자기 팔이 저려오더니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체크도 못 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도 친구의 목소리는 그랬었다.

“이제 팔이 70% 이상이나 회복이 되어서 살살 쓰고 있어. 네게 편지를 쓰고 싶지만 아직 펜은 쥐기가 힘들어. 그래도 자판기는 두드릴 수 있으니까 이 메일로 쓸게.”
나라면 ‘아직도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다’고 불평을 했을 텐데, 친구는 ‘70% 이상이나’ 회복이 되었다고 했다. 멀쩡한 두 팔을 가지고도 여름 내내 격려의 편지 한 장 못 띄우고 지낸 나에게 섭섭해하는 내색도 없이 오히려 소식 전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전화를 끊고 언제인가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특강에서 들은 짧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92세의 할머니 이야기였다. 70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하던 할아버지와 사별한지 얼마 안되어 그 할머니는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안내원이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방으로 모시고 가면서 방에 이러저러한 가구가 있다고 설명을 하고 창에는 아주 산뜻한 커튼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방이 정말 맘에 드는구먼”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아직 방을 보시지도 않았는데요…” 안내원이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방을 꼭 봐야 하나. 어떤 가구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내가 그 방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달린 거라고 생각하지. 난 벌써 마음을 정했다우. 그 방이 마음에 든다고. 행복이란 우리가 미리 정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내 마음을 정하지. 행복한 하루를 살자고. 선택의 권리는 나한테 있으니까. 여기저기 성하지 않은 몸이나 불평하며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내 선택이고, 아직 그래도 쓸만한 구석도 남아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일어나 활동하는 것도 결국은 내 선택이니까. 하루하루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아침에 눈이 떠지면 그 선물을 열며 행복해하지. 그리고 그 하루만을 생각하려 하지,” 라고 말하며 그 92세의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경기는 원하는 대로 빨리 회복되어 주지 않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자연재해는 끊임없이 우울한 소식을 전하는 가을의 초입. 그래서 자칫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기 쉬운 요즈음,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마음을 우리가 배치해 미리 ‘행복’이라고 새겨진 도장으로 마음의 출근부에 꾹 눌러 찍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도장의 인주 색깔을 매일 바꿔보는 것도 좋으리라.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의 고운 인주를 준비해 ‘행복’이라는 도장을 월화수목금토일의 일곱 날의 출근부에 찍는 것이다. 선택의 권리는 내게 있으니까.

이영옥 엔지니어·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