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색깔

2005-09-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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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로 접어들면서 자연의 변화가 여러 모양으로 가을 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 가을에 연상되는 색채는 황금색이 아니면 청색이다.
‘9월’이라는 시에서 헤르만 헤세는 황금색을 말하고 있다. 키츠는 그의 시 ‘가을의 노래’에서 청색을 노래했다. 화가들도 가을의 느낌을 주로 황금색이나 청색으로 표현했다. 색채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 또한 다르다. 적색이 정열을 연상시키듯 청색은 멜랑꼴리한 감정을 안겨준다. 청색을 주로 사용한 피카소의 그림들이 유난히 침울해 보이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음에 민감한 음악가는 색채에도 예민했던 것 같다. 프란츠 리스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가끔 “청색을 더 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애조를 띠게 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비겨 황금색은 매우 화려하다고 하겠다.
같은 가을이라도 오곡이 무르익은 9월에는 천지가 황금색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풍요한 수확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한 행복감으로 채워 놓는다. 고독의 감상에 젖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자연이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 F장조인 것이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 것 같으면 F장조는 단조로 바뀌게 될 것이다. 청색이 차갑게 가라앉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짜릿한 참맛을 느끼게 하는 것도 10월이다. 조석으로 부는 산들바람을 흔히 가을 바람이라 말하지만 9월에는 아직 가을의 쓸쓸한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비록 오늘날과 같은 과학 문명의 편의는 누리지 못했을 망정 마음의 여유는 넉넉해 당나라의 시승(詩僧) 한산(寒山)은 ‘吾心以秋月/碧潭淸皎潔’(내 마음 가을달처럼 밝고, 골짜기 푸른 물위에 교교하게 비치고 있다)고 가을을 노래했었다. 이 때의 가을달이란 마음의 근원적인 것을 상징한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어느 한 때도 조용한 때가 없는 것이다. 일평생을 희로애락 중의 한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밑바닥을 찾아볼 것 같으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 순수한 인간성이 있을 것이다.
가을달은 이제부터 점점 더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동서고금이 여전한데 인간사회는 어찌하여 날로 흉악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아무리 이 때가 말세라고는 하지만 인간성이 어디까지 악화될 것인지 불안하고 안타깝기만 하니 도대체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이 맞는 것인지 ‘성선설’이 맞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 옛날 예수는 사람들이 저녁 하늘이 붉으면 날이 맑겠고 아침 하늘이 붉으면 날이 궂겠다고 하루의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한탄하였는데 현대인은 자연의 변화에조차 둔감한 상태이니 어디에 가서 호소할 것이며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이성철
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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