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울너럭/초가을 단상(斷想)

2005-09-2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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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가정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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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 여름내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맘을 달래준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음력으로야 입추(立秋)가 지났으나 가을은 가을이다. 그러고 보니 양력보다 음력이 더 맛깔스러운 것 같다. 양력보다는 음력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그랬다─과 연결된 시간이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입추도 우리말로 풀면 ‘가을의 문턱’쯤 될 텐데, 정말 가을의 문턱에 서자마자 찬바람이 돌고 무언가 가슴 한구석에 차분하고 새로운 기운이 돌지 않았는가. 계절은 변함 없이 하늘이 정해준 섭리를 따라 가고 또 온다. 한 번도 그 순서를 거르는 법이 없다. 그 가고 오는 계절의 흐름에 인간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키어 역사라는 것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설 때마다 순천 자는 흥할 것이요 역천 자는 망할 것이라(順天者興 逆天者亡)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어김없이 마음에 다가온다. ‘순천’, 즉 하늘에 순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따라 산다는 말이니, ‘역천’은 당연히 그 질서와 섭리를 거스르며 산다는 말이겠다. 오늘날 온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생태학적인 위기나, 첨단과학의 위력으로 생명을 복제해보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력, 혹은 강대국이라는 이유로 힘없고 약한 나라들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경제적으로 목 죄고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역천’의 길을 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하늘의 섭리를 거스르는 예는 비단 생태학이나 생명 복제와 같은 큰 문제와만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늘의 섭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Way of life)이나 사고방식(Way of thinking)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사랑과 이해, 너그러움과 용서, 나눔과 섬김 등은 하늘의 뜻이요, 인간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인데, 우리는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고,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배타적인 데에 익숙해져 있으며, 나누고 섬기며 살기보다는 움켜쥐고 자랑하며 사는 데에 익숙해져 가고 있지 않은가. 자연의 만물이 하늘이 정해준 질서를 따라 처신하듯이, 우리도 하늘이 정해준 무언의 삶의 법칙을 존중하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한결 평화롭고 살맛 날 것이다.
올 가을에는 계절이 깊어지는 만큼 나도 깊어지도록 스스로를 추스르고 닦는 데(修身)에 더 힘써야겠다. 사실, 세계의 평화니 정의니 하는 큰 이야기들은 나 한사람의 작은 자기 돌봄과 이웃 돌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면서, 여름내 지친 몸과 맘에 큰 숨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정말 내 하루 하루의 삶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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