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나이 팔십이면 …”

2005-09-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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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팔십이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떻게 살까”하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는가. 나이 오십이면 누구나 적어도 한 두번은 생각해 볼 과제이다.
요즘 국제적으로 경제, 문화의 차원에서 대두되고 있는 과제중 이보다 만인의 관심을 더 사로잡는 일이 없을 듯하다. 세계 인구의 고령화 문제이다.
다수의 중년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주로 몸으로 때우는 생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인 사회에서 인구의 고령화는 더 절실한 문제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다는 이 시대에 40~50대부터 별 직업 없이 반평생을 백수로 사는 것이나, 노년이 되도록 심신이 고달픈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전망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직업의 유무를 막론하고 해마다 길어지고 있는 수명 앞에서 노년의 삶의 질을 생각해볼 때가 온 것이다. 외롭고 무료한 생활에 연유하는 우울증, 자살, 도박 등 한인사회에 간간이 들리는 노인층의 문제들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퇴직한 노년층들을 대거 기용해 쓰고 있다. 노년들의 사회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특별한 전문 기술이나 뚜렷한 자기만의 생활이 없는 노년들이 다시 일을 배우고 작으나마 돈벌이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바쁘게 나날을 보내는데 보람을 느낀다 한다. 무엇보다 큰 보람은 사회의 흐름에서 탈락되지 않고 더불어 사는 기분일 것이다.
우리의 중년들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기본적으로 우선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며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가 돌아가는 모습을 꿰고 있어야 한다.
한인들이 열광하는 웰빙이란 게 내 몸 하나, 자기 관리라는 게 옷맵시 있는 날씬한 몸매를 다듬는데 그치면 너무 공허하다. 늙어도 날렵한 마음으로 젊은이들과 대화 가능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한 수 가르쳐줄 수 있어야한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넷 서핑(net-surfing)이라는 인터넷 파도타기는 이제 전자 레인지나 핸드폰 같은 가전 제품을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의 기본이 된지 오래이다. 한발 더 나아가 컴퓨터를 실용적으로 쓸 수 있어야한다.
유사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서 저장/활용하고, 먼 곳에 있는 친지들과 이 메일로 소식이나 사진을 주고받고, 워드 프로세서로 간단한 서류/편지도 만들고, 누가 내게 무엇을 컴퓨터로 보내와도 약간의 정보만으로 그걸 처리할 수 있고, 소프트웨어로 가계부 작성을 해서 컴퓨터에 각종 정보를 긴요하게 출입력 하여 자신의 주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이 시대의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
배운 사람이 난 컴맹이라서... 라는 말은 난 게을러서... 난 멍청해서...라는 것처럼 부끄러워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내 주위를 보면 중년은 물론 70~80 노인들까지도 손자들과 사진도 이 메일로 척척 주고받는다. 최근 타임에는 중국에서 102세 노인이 인터넷을 배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대가 그만큼 변한 것이다. 아무리 나는 어느 대학 출신인데 해봐야 최소한의 상식을 구사할 수 없다면 자긍심은 초라해질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도구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목적이라면 나의 존재가 깨어 있어 나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하고 즐기며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것, 이웃 사회의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고 기쁨과 도움을 주고받는 것 등이리라.
이 모든 것은 약간의 노력과 희생을 요구한다. 필요하면 학원에 다녀서라도 배우고, 틈틈이 독서하고, 문화생활을 넓히고, 시사 주간지도 읽고, 불행한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고, 자기만의 취미생활을 찾고, 하릴없이 모여 떠들고 노닥거리는 시간을 줄여야한다.
나이 팔십에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내 나름의 삶을 즐기며 “이대로 좋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지금 피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열심히 살아야한다. 몸도 마음도 고프게... 우리 세대는 자신이 못다 한 고등교육을 우리에게 어렵사리 시킨 우리의 부모님들보다 한 걸음 백 걸음 더 나아야한다. ‘내 나이 팔십이면...’- 오늘의 중년 앞에 놓인 고민이며 과제이다.


박정현
IT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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