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호혜적 민족주의
2005-09-14 (수) 12:00:00
새크라멘토 한인 감리교회 이현호 목사
지난달 14일, 새크라멘토 한인 회와 지역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8.15광복절 60주년 기념집회에 참석하였 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와서 처음 참석하는 광복절 기념집회였다. 그런데, 집회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독립을 기념 하는 그토록 소중한 모임에 노, 장년층 수십 명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 기 때문이다. 순간, 이 모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별로 의미 부여를 하지 않 은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집회 내내 ‘아이들과 함께 참석했어야 했는 데…’ ‘정말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참회와 고백의 심정으로 ‘이건 아닌데…’에 대한 사족(蛇足)을 달자면 이렇다. 난 내 마음을 자극하는 특별한 절기, 예를 들자면 3.1절, 8.15광복절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조국에 대해 생각하 면서 살지 못한다. 가끔씩 미국 사람들과 만날 때면 마치 내 조국에 대한 큰 애정 을 갖고 있는 것처럼 한국 역사가 어떻고, 한국교회가 어쩌고저쩌고 열변을 토할 때도 있지만, 사실을 그만큼 조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도 아니다. 이따금씩 민 족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렇게 가슴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기도는 아니었다. 단지 젊은시절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열심히 투쟁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기본적인 양심과 신앙에 입각한 조건 반 사적인 행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철학적, 사상적으로 조국은 나 에게 소중하다. 그런 쪽으로는 할 말이 많다. 그런데 심정적, 일상적으로 조국은 나에게서 참으로 멀리 있다. 조국이 내 머리 속에서는 또렷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서는 희미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참으로 이상했다. 조국애랄 것도 없는 그렇게 얄팍한 연결고리를 간신히 유지하고 살아온 내게 참회의 무르익 은 시간(카이로스)이 다가왔는지, 그 날은 참으로 마음이 민망하고 아파 왔다. ‘이게 아닌데…’, ‘나 자신도 이렇게 내가 몸담고 살았던 땅과 그 땅 사람들의 역사를 홀대하면 안되는데…’,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우리 민족의 역사 (history)와 그 역사의 마디마디에 배어 있는 슬픔과기쁨의 이야기들(stories)을 들려주어야 하는데…’,‘역사를 기억하면서 그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배우지 못하 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는 법인데…’, ‘과거는 망각하거나 부정함으로써가 아 니라 기억하고 반성하고 기념함으로써 창조적으로 극복되는 법인데…’.
건강한 민족주의, 즉 민족의 이 름으로 다른 민족을 배타시하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닌, 한 민족의 흥성(興盛 /prosperity)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호혜(互 惠/reciprocity)적 민족주의를 위하여 무언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떨쳐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