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난을 경험한 힘

2005-08-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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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캄보디아의 시엠립에 가서 앙콜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사원들을 둘러보며 그 규모와 건축미에 압도당해 할 말을 잃고 있는데 동행했던 한 친구가 무심코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12세기에 무얼 했기에…”
“조상들이 남겨준 게 크게 없으니 현재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잘해서 살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내고 있지 않아요?”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크메르루즈의 끔찍한 학정을 거치고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은 캄보디아인들의 소박한 미소를 접하면 정말 그들이 잘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나마 조상이 남겨놓은 사원들마저 발견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든 길을 걸어야 했을까.
멕시코시티의 유적들과 건축미 넘치는 현대 건물, 그리고 산꼭대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판잣집들의 콘트라스트를 보며 멕시코인들에게는 분명히 상당한 저력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혼자 다짐했던 이유는 아마도 산동네 판잣집이 결코 눈에 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 서먹하다) 6학년 때인가, 우리가 살던 서울 신당동 뒷산의 판자촌에 비행기가 떨어져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혔던 기억이 난다. 마침 그 날 감기로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었던 나는 2층 화장실 유리창을 통해 기우뚱거리며 날아가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을 목격했고, 판자촌에 불이 붙어 뿜어 나오던 연기와 소방차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남을 이해하게 되므로 다양한 경험은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된다. 조상들이 이룩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유럽인들을 받쳐준다면, 한국인에게는 가난하게 살았던 기억이 오늘날의 세계에서 오히려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계의 최강국인 미국의 가장 큰 약점은 약소국의 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미국인의 기억 속에 미국은 언제나 강국이었다. 강국의 입장에서 약소국들에 동정을 보낼 수는 있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약소국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는 미국 내외에서 보다 많은 국가의 사람들과 친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초등학생 아들 존이 선물로 받은 고액의 자전거를 뉴욕 거리로 혼자 끌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시무룩해 돌아오자 재클린 오나시스는 “그 아이는 필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잃어 보아야 소중한 것도 알게 되지요” 하며 눈 하나 깜짝 안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나중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인도 여행길에 오르자 테레사 수녀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시켰고, 테레사 수녀는 존의 인사를 받자마자, “아니 왜 거기 그렇게 서 있나? 자네 차 가지고 왔지? 여긴 할 일이 많다네” 하며 당장 일을 시켜 존은 2주간인가 그 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손자 손녀들에게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자꾸 들려줄 필요가 있다. 설교조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자랄 때 8형제가 방 두 칸에서 지냈고 겨울이면 온 식구가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밑에 발을 넣어 몸을 녹였다. 일제시대에는 어떻게 지냈고 육이오 때는 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미국 이민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한 개인의 지난 이야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아래 세대를 겸손하게 만들고, 따뜻한 이해의 눈을 가지게 하며 결국 미국과 전 세계에 긍정적 에너지를 퍼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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