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난여름 어느 날

2005-08-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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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이 지나며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가주는 맹하의 절기였다. 8월의 태양만큼 정열적으로 여름을 나곤 하던 나도 지쳐서 진종일 이마의 땀방울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수를 쫓아버려야 했다. 여름철 졸음은 쇠파리만큼 끈덕지다. 안간힘을 쓰며 잠을 쫓아도 졸음은 먼저 내 눈꺼풀부터 공략한다. 손가락 끝마디를 무력하게 한다. 다음에는 팔이 나른해지다가 입이 옆으로 벌리며 침이 주르륵 흐르게 한다. 그리고 폭삭 나를 옆으로 넘어뜨리며 완전히 내 몸을 점령해 버린다. 잡초같이 억세게 살아온 인생. 졸음에 져서야 쓰겠는가.
유한한 인생을 낮잠으로 묻혀버릴 수는 없었다. 일감을 찾을 일이었다. 도리질을 하며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내 침실의 이불 침대보부터 걷어냈다. 이불 호청, 요 시트를 빼내 바꿔 끼우고, 이불 침대보는 퀼트로 바꾸었다.
아예 커다란 타월을 옆에 차고 연상 땀을 닦는다. 네 개의 침실을 모두 여름 이불로 갈아놓고 이방 저방을 시찰한다. 환경도 시원해지고 내 몸도 가볍다. 바로 이열치열이다. 차를 마셔야겠다. 여름에는 찻잔 안이 백색으로 된 것이 좋다. 차 맛을 색으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찻잔의 문양이 수수한 중간색이면 귀하게 보인다. 찻잔 밖의 문양도 문양이지만 잔 안벽에 그림이 그려진 것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이만한 사치는 누려도 되지.
씁드그레한 차 맛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아끼며 홀짝홀짝 마시는 그 시간이 나의 마음을 열어주고 분위기 있는 여인으로 만들어주어 자아 만족한다. 술꾼들의 심사도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 남편이 소주를 좋아해 주말마다 빈 술병으로 강냉이를 무던히 바꿔먹으면서 은근히 구박도 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야 술꾼들을 이해한다.
내친 김에 나는 부엌 찬장의 그릇을 다 끄집어냈다. 청자그릇을 백자로 바꾸어 놓고 싶어서이다. 여름 초엽에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일을 올해는 이상하게 내 마음이 연애하는 소녀 마냥 싱숭생숭, 차일피일 늦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청자그릇 일습은 굽 안에 석정(石靜)이라는 도예가의 아호가 새겨져 있다. 합마다 뚜껑이 있어 귀티가 나긴 해도 실핏줄 같은 균열이 내 가슴을 아려 오게 한다.
여름이 긴 남가주에서는 청자보다는 백자 식기 쓰는 기일이 길다. 밑굽에는 전통도기라는 네 글자와 청송(靑松)이라는 아호 밑에 빨간 인주로 낙관이 찍혀있다. 차가운 기운 속에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고고함에도 불구하고 백자에 담긴 음식은 무엇이든 때깔이 살아나서 구미가 돈다.
청자 건 백자 건 되바라진 점이 없어 천년 세월을 대접받아왔는가 보다. 수탉 목욕하듯 후드득 목물하고 냉채 미역국 끓여 간을 보니 내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나왔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빗긴 햇살 사이로 솔솔 부는 서녘바람에 “아! 시원하구나”탄성이 나온다.


정옥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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