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2005-08-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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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인 사랑

‘사랑’이란 느낌과 감성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무지무지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이 감정이 사랑일까’ 혹은 ‘내가 그(녀)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욕망(소유, 집착, 습관...)하는 걸까’하는 식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생각에 의하면 사랑은 낭만적 운명론(신화이자 착각)에서 비롯된다. 즉 사랑을 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비행기에서 만난 옆자리의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철학적으로 생각하면서 사랑을 시작하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을 키워나가고, 사랑이 일상이 되어가고, 그 사랑이 죽음을 맞는.. 그리고 사랑을 잃은 상실감에서 오는 삶의 무기력함에 빠졌다가, 상실감은 어느새 망각의 강을 건너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일상적인 사랑의 흐름을 담고 있다. 즉 사랑의 생성에서 사랑의 죽음으로의 이야기를 24개의 에세이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야기는 사실 사랑과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밟아봤을 그저 밋밋한 플롯이다. 그래서 이 책의 묘미는 사랑하는 과정에서 연인들이 직면하는 모순 투성이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잘게 쪼개어 발랄하고 유쾌하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방식에 있다.
사실 난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흥미가 유발되었다.
“정신이 전통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면, 그 이유는 정신이 분석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원인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생각 특유의 거리와 우월성 때문에 지식인은 단지 연인의 적이 아니라, 국가의 적, 대의명분의 적, 계급투쟁의 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전통적인 이원론에서,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스펙트럼의 양끝에 앉아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사랑을 한다”
그리고 작가는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성숙한 사랑은 절제로 가득하며, 이상화에 저항하며, 질투,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차원을 갖춘 우정의 한 형태이며, 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이다. 반면 미성숙한 사랑은 이상화와 실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비틀거림이며, 환희나 행복의 감정이 익사나 섬뜩한 구토의 인상과 결합되어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마침내 답을 찾았다는 느낌이 이렇게 헤맨 적이 없다는 느낌과 공존하는 상태이다”
사유의 극과 극을 오간 진지하나 유쾌한 작자의 이런 글에 매료되었다면 이 책을 통해 ‘사랑’에 대해 유쾌하고 쿨 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즐거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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