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머와 위트

2005-08-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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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위트는 갈증날 때 한 잔의 생수처럼 시원하다. 메마른 땅에 나리는 단비처럼 달콤하고, 비 온 뒤에 무지개처럼 흐뭇한 여운을 주어서 좋다.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도 유머 한 마디로 화기애애하게 바꿔버린다. 유머는 거리낌없이 함께 웃는 익살스러움이다. 풍자는 남에 대한 공격과 독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유머는 그저 웃고 즐기는 천진한 말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는 ‘악처’ 하면 크산티페를 꼽는다. 그녀는 큰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바가지를 긁은 다음 창 밖으로 물세례까지 퍼부었다. 소크라테스는 옷이 흠뻑 젖고 비 맞은 장닭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천둥이 친 뒤에는 폭우가 나리지” 하고 유머를 했다.
이태조가 한번은 큰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오늘은 군신의 관계를 떠나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흉금을 털어놓고 즐겁게 놀자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무학대사에게 짐짓 “당신은 꼭 돼지 같소” 하고 험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대사는 “군왕께서는 성인 군자이시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태조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아니 스스럼없이 놀자고 당부했는데 무슨 대답이 그러냐”고 야단을 쳤다. 당황한 대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옵니다. 원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군자의 눈에는 군자만 보이옵니다”라고 하자 어색했던 좌중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종의 생부 흥성 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시골에 묻혀 사는 청년 한 사람이 벼슬을 얻으려고 대원군을 찾아갔다.
대원군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대청 마루를 뒷짐을 진 채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청년은 눈이 빠지도록 인사 올릴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엎드려 큰절을 했다. 고개를 쳐들고 보니 자기에게 눈길을 주기는커녕 여전히 왔다갔다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음 차례를 노리다가 다시 한번 넓죽 인사를 올렸다.
그랬더니 청천벽력 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 죽은 사람도 아닌데 산 사람에게 절을 두 번씩이나 하다니, 저 놈을 당장 잡아 쳐 넣어라하고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청년은 너무 놀랐다. 이제 죽을 몸이라 생각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첫번째 드린 인사는 문안 드리는 인사이고, 두 번째 드린 인사는 물러간다는 인사이옵니다”
대원군은 분명 그런 것이 아닌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뛰어난 기지를 가상히 여겨 그의 소원대로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위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지다.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는 뛰어난 책략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상황을 급전시키는 언어의 마술이며 정곡을 찌르는 언어의 묘수 바로 그것이다.

고영주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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