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미국민 술’로 등극

2005-08-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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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39% 맥주 36%로 1992년 이래 처음으로 앞서

갤럽 여론조사

생산량 늘고 전보다 싼값에 공급 대중화
“심장질환 예방등 몸에 좋다” 알려져
영화‘사이드 웨이즈’히트 와인 열풍에 일조

한국인에게 소주, 일본인에게 사케가 있듯이 프랑스하면 와인, 영국엔 위스키, 러시아엔 보드카가 있다. 그러면 미국인의 술은? 당연히 맥주 아닐까? 맥주는 독일의 술이지만 미국인들에게도 가장 대중적인 국민의 술로 사랑 받아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통념을 뒤집고 미국 주류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통계수치가 지난 주 발표되었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자주 마시는 술이 와인이라고 답한 미국인이 39%, 맥주를 가장 자주 마신다는 사람은 36%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하드 리커 혹은 여러 종류를 다 마신다는 사람들이 각각 소수를 차지했다)
갤럽이 이 문제에 관해 꾸준히 조사를 실시해온 1992년이래 와인 애호가가 맥주 애호가의 숫자를 앞선 것은 처음이다. 조사통계의 오차 범위를 감안한다면 거의 막상막하라고 볼 수도 있으나 어찌됐건 이 수치는 현재 미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떻게 와인 인구가 맥주 인구를 앞서게 됐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보다 좋은 와인이 훨씬 값싸게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많은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 것은 물론, 기술의 발달로 와인의 질이 더 좋아졌고, 코스코나 트레이더 조스와 같은 상점에서 싼값에 대량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내 대중화된 것이다. 더구나 캘리포니아 산 와인은 빈티지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해마다 고른 맛을 유지하는 것도 더 쉽게 대중화될 수 있는 요인으로 간주된다.
과거 와인은 돈이 많이 드는 사치스런 음료로 일부 소수 층에서나 즐기는 술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사회가 좀더 풍요로워지고 여유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와인을 즐기는 층도 서민층에까지 꾸준히 확산돼온 것이다.
와인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건강’이다. 맥주는 많이 마셔봐야 몸에 좋을 게 없지만 와인, 특히 레드 와인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적포도주가 심장질환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의학상식으로 일부 의사들은 환자에게 매일 저녁 레드 와인 한잔씩 마실 것을 처방하기도 한다. 골수 와인애호가들은 와인이 암도 치료할 뿐더러 만병통치약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해초 히트한 영화 ‘사이드웨이즈’가 와인 열풍에 일조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 영화를 보고난 후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맥주업계에서는 당연히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 맥주를 ‘남성다운’ 음료라고 선전하는 맥주회사들은 “나파 밸리의 뜨거운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와인”이라며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고 있음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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