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 볼만 한 사치

2005-07-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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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보면 좋은 자동차, 새로 나온 전자제품, 비싼 보석반지 등등 각자의 취미나 기호에 따라 사치하는 방법들이 가지각색이다. 나의 언니들은 새로 나온 골프채나 비싼 세인트 존스 니트웨어 사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비록 외국 관광여행도 사치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내 경우는 비싼 골프채, 보석반지, 비싼 니트웨어 등보다는 외국 관광여행 하는데 돈을 쓰는 것이 덜 아깝다.
매년 여름휴가엔 딸 제시카와 둘이서 LA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할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남미 브라질 쪽으로 가 볼 생각이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는 여름방학 때면 한국에 몇 번 다녀오고, 하와이와 옥스나드 등 가까운 해변가에서 휴가를 많이 지냈는데,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따라다닐 수 있을 때부터는 외국 관광에 나섰다.
딸 아이에게 세상 구경도 좀 시켜주고 싶었고, 나도 한국과 미국 밖에는 나가본 경험이 없는지라, 될 수 있으면 많은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체 관광여행 떠나는 것이 무척 망설여졌었는데 6년 전 한인여행사를 통해서 유럽여행을 다녀오신 분이 너무 좋았다며 적극 권장을 하시는 바람에 나도 단체 관광여행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젠 상당히 재미가 들린 편이다.
지난 6년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모나코,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일본, 캐나다 등 13개국에 있는 런던, 브뤼셀, 암스테르담, 뮌헨,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파리, 니스 칸느, 폼페이, 로마, 피사, 베니스, 비엔나, 인스브루크, 짤스브루크, 부다페스트, 프라하, 도쿄, 교토, 나라 등등 55개 도시를 수박 겉 핥는 식으로나마 돌아보았다.
세계 역사, 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각국의 도시에서 그들의 역사 유물, 박물관, 건축 문화를 경험했고 현재 살고 있는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특유의 지형과 자연, 예술과 생활을 접할 수 있었다. 거리와 상점, 갤러리와 식당에서 그들 특유의 풍습과 음식을 보고 듣고 먹고 마시며 사진도 찍고 샤핑도 했다. 책이나 TV, 영화를 통하여 보았던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느낌이었고 짧은 시간에 딸과 엄마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함께 남을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었다.
우중충하고 오래된 건물에 검은 오염이 껴서 초라하고 더럽게 보였던 영국, 세느강에서 야경 크루즈를 하면서 즐긴 화려한 조명기술의 기가 막힌 연출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던 파리의 건축물들과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난한 화가가 그려준 제시카의 중학교 때 초상화, 별로 예쁘지도 않은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초상화를 보면서 들은 프랑스 혁명 역사이야기, 이탈리아 로마에서 줄리어스 시저의 무척 초라한 가짜 무덤을 보며 로마 제국을 통일한 황제의 무덤이 어떻게 저렇게 초라할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 공산국가에서 자본국가로의 급속한 변화기에 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본 하얀 종이 같은 얼굴빛에 모래색 같은 금발의 무척 순수해 보이는 헝가리 아가씨…
체크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는 호텔 운이 좋았다. 공산국가 시절에 최고 공산당 간부 회의장으로 쓰였다는 호텔 자체도 최고급이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에게 배정된 방이 화려한 다이닝룸과 응접실이 딸린 초호화판이었다. 그 멋진 방은 완전 기대 밖의 경험이었다.
니스와 칸느에서는 ‘캘리포니아 해변보다 특별히 아름다운 게 없다’고 딸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도쿄 이외에는 너무나 검소해서 가난해 보이기까지 한 일본 도시의 사람들을 보고는 최고의 부를 가진 나라답지 않다고 감탄도 했다. 관광객 이외에 타민족을 거의 만나볼 수 없었던 멕시코시티와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신 관광도시 칸쿤 등등, 다 열거하려면 책 한 권은 될 만큼 즐거운 경험이었다.
먼 곳으로의 여행은 일년 내내 내게 쌓였던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다. 딸 제시카는 세계 역사를 배울 때 “아하, 나는 저기 가서 보고 왔지”, 하면서 금방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녀 교육에 권장하고 싶은 산 교육이다. 또 매년 여행을 끝내고 LA에 돌아오면 미국만큼 살기 좋고 편하고 모든 것이 풍부한 나라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특히 이곳 캘리포니아 LA에 이민 와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축복” 자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주어진 삶을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며 매일 매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국내 여행보다 비싸지만, 외국 여행은 해 볼만한 사치이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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