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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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유행한다

2005-07-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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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가는 갑순이가 갑돌이를 그리며 달을 보고 옷고름을 적시던 그 옛날 영자와 금순이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영희와 철수가 바둑이하고 놀던 시절, 정남, 일웅. 영권도 남자답게 활개를 쳤던 이름들이다.
그 뒤 영미, 경애, 선아가 등장하면서 춘추 전국시대를 맞은 느낌 이었다.
그러자 드디어 고유어로 된 이름이 인기리에 상영되기 시작했다. 하나, 보람, 보라 그리고 한샘, 한솔, 우람이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 파워를 과시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슬, 슬기, 하늘, 아름이를 부르면 한 반에 두세 명씩 합창을 한다.
당장 야구 선수 중에도 안흙, 배힘찬, 서으뜸, 최고야가 특이한 그 이름처럼 한참 쭉쭉 뻗어나가고 있는 유망주들이다. 금비, 단비, 은비가 있는가하면 구름, 샛별, 소라도 있다. 그 사이에 금파, 은파도 보기 좋게 파문을 긋는다.
그런데 잊혀지지 않는 이름도 있다. 고유미, 최우선, 노숙자, 배우자, 김치국. 이영화, 한백년이 있다. 그리고 배신자, 고리라가 있는가 하면 배우리, 고우리도 있다.
한아름, 강나리, 금보라, 나오미, 정다운, 옥소리, 은구슬, 온누리가 어느날 예쁘게 머리를 따고 학교로 왔다. 부르기 좋고 부드럽고 듣기 좋은 이름들이 운동장을 예쁘게 수를 놓는다. 학교 출석부는 이제 아름다운 동화책이 되었다.
실제로 10음절 이름 ‘하늘빛실타래로수노아’도 있다. 지금은 여섯 자까지 긴 이름도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이름은 어떨까?
강(姜)뚝길개나리, 민(閔)들레푸른빛, 석(石)류꽃타는놀, 봉(鳳)선화연정, 이(李)사랑참사랑, 부(富)귀누리리, 박(朴)사네한솔이, 신(申)바람새롬이.
그런데 어릴 적 샛별이, 꽃샘이, 초롱이는 중고등 학교를 지나면서 개명을 서두르게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런 이름이 잘 어울릴까?
이제 이름도 세계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김주리, 이사라, 조조셉, 박마리, 오헨리, 그러다가 어느덧 린다 쵸이, 헬렌 조, 폴 리, 로렌스 박처럼 외국 국적으로 이름이 바꿔지기도 한다.
이름에 건강 있고, 운수 있고, 희망 있고, 성공 있다.
그냥 그렇게 믿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간판이다. 따라서 작명은 사려 깊게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맨 처음에 주는 가장 귀하고 멋진 선물이 있다면 평생 즐겁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리라. 각자 자기 이름을 되뇌어 보며 좋은 이름이라고 확신을 가져 보자.


고영주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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