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을 통해 만들어 진 사람

2005-06-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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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메리는 근육이 약화되어 가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하루하루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어떨 때는 통증이 심해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현재 겪고 있는 육체적인 고통도 참기 힘들지만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할 그 날을 예비하며 살아야하는 정신적인 고통은 얼마나 클까. 그런데도 메리 입에서 “아프다”. “힘들다”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다 눈을 뜨기 전에 그녀는 “하나 둘 셋” 하고 심호흡을 하며 용기를 낸 후 눈을 뜬다고 말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깜깜한 세상을 접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빛이 보이는 순간 오늘 하루도 볼 수 있음을 감사하고,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음을 감사한다. 목소리가 있어 노래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성악가인 그녀는 언젠가는 노래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근래에 들어 자주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며 피아노 건반을 만지면서 그래도 아직은 목소리가 있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라고 감사한다. “왜 내가 아파야 하는지 저는 몰라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시지요.” 하는 자신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도 모자랄텐데 그녀의 입술에서는 감사가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신체의 기능을 잃어 가는 힘든 상황 속에서 감사가 넘칠까. 메리에게 닥친 고통이 내게 닥쳤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하며 사는 메리의 초연한 모습이 인상깊어 그녀에게 비결을 물었다. 메리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처음에는 무척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분노하며 울부짖었다 한다.
몇 년 전 메리는 병원에서만 살다가 죽은 두 살 난 아기를 만나게 되면서 “왜 나한테?” 하는 원망의 마음이 “하나님만이 아신다” 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마음이 바뀌니까, 자신으로만 향하던 눈길이 밖으로 향하게 되었다. 주위를 돌아보게 되면서, 자기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양로원에 찾아가서 자선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위로를 받게 되었다한다. 병을 앓기 전에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믿으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삼았던 어리석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면서 웃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는데 병이 자기를 사람답게 하였다며 감사할 뿐이란다..
서른 세 살 때 초청장 없이 찾아온 질병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느끼면서 인간의 한계를 날마다 경험하게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다워질 수밖에 없더라고 한다.
우리가 가장 약하여 졌을 때 가장 강하여질 수 있는 진리를 메리를 통하여 배운다. 살아가면서 고통은 누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고통의 과정을 원망하며 통과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면서 통과하느냐에 따라 삶의 승부가 가려지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우리의 눈이 향할 때 원망이 감사로 변하게 된다. 메리가 감사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녀의 삶은 복된 삶이 되었다.

김현덕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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