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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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2005-06-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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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통로 제시한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써 낸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 25주년 기념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겪는 방황, 사랑, 모험 등을 주로 다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손길이 닿으면 세상의 어느 하찮은 부스러기도 신비하고 생생하며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마치 아침에 황금빛 태양이 떠오르면 사물들이 금빛 물이 들어 반짝이며 빛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전 세계 젊은이들이 즐겨 읽는 것 같다.
새로 펴낸 이 책은 밤 11시 56분부터 아침 6시 52분까지 한밤중의 7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우리’라는 화자가 카메라를 통하여 보는 독특한 기법의 영상소설이다. CCTV혹은 TV로 등장인물의 갖가지 사연을 마치 감정이 배제된 기계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무감각하게 무신경하게 그냥 하나의 사물처럼 대하는 것을 비유한 기법이다.
주인공인 19세의 ‘마리’가 심야에 겪는 7시간 안에는 우리의 인생살이가 축약되어 들어있다. 존재의 고독, 방황, 사랑의 기미, 위협, 폭력 등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의 기묘한 일상과 그 이면을 차갑게 영상으로 들여다본다. 젊은 남녀, 자매 형제, 부부, 샐러리맨에서부터 암흑세계의 사람 등 갖가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가운데, 폭력과 공포가 도사리고 부조리가 휩쓸고 정이 메말라 가는 현대 사회에 과연 새날의 광명이 비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있다.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실낱같은 구원의 통로를 제시하고 있다. 사랑과 관심과 한 번쯤은 우리의 소중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타자와 화해하는 즉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하루 낮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반면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은 하룻밤의 이야기를 그렸다. 낮 동안에 겪는 일들도 밤의 안식으로 향하는 긍정적이고 따뜻함이 배어 있듯 이 책 역시 삭막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밤의 폭력과 범죄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환한 아침을 맞이하는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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