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적 자존심

2005-06-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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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세가 급 물살을 탄듯 변해가고 있다. 경제문제가 숨통을 죄고 있어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범 김구는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길은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것뿐이라고 일찍이 말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문화가 국민의 자부심으로 등장하면 개개인의 흩어졌던 생각을 하나로 결속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이 문화적 자부심으로 결속하면 일체감을 갖고 단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의 제반 어려운 문제들도 문화적 발상으로 풀어야 한다. 문화는 이미 이것들의 상위개념으로 정착되어 모든 것을 포용한다. 정치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고 경제도 문화적 발상에서 창조력을 동반해야만 한 단계 올라 설 수 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영자나 지도자들의 판단기준은 문화적 수준에서 비롯된다. 곧 문화가 국력이고 문화적 자부심이 국민들로 하여금 일체감을 갖게 하며 곤경에 빠졌을 때 구심점이 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수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5,000년 동안 빛나는 역사를 창조하면서 살아온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땅이 넓고 힘이 셌던 중국의 역대 왕조가 형님 정도의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와 공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라고 한반도를 제 나라에 복속시켜 주무르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그들도 그런 생각을 충분히 가졌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까닭을 우리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찬란한 신라의 불교문화를 이룩했고 성리학을 받아들여 조선성리학으로 발전시켜 되레 중국을 놀라게 한 문화적 자존심이야말로 우리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 국가의 구성원이 제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자존심으로 생존의 조건을 삼는다면 결코 누구도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의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을 얕잡아 보는 이유도 궁극에는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했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는 일본보다 앞서 왔었다는 우월감을 설명할 때 불교의 전수를 비롯해 왕인의 문자 전수,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강제로 끌려가 발전시킨 도자기 문화 등을 말한다.
지자제가 실시된 후 많은 지역에서 문화역량을 키우는 사업을 해나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문화적 소양이 전혀 없는 단체장들이 성급하게 벌이는 각종 문화행사가 예산낭비란 지적을 받고 도마 위에 오른 지 꽤 오래 되었다.
이것들은 문화가 국력이 되는 길이 아니다. 그리고 문화적 자존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지식과 기술이 있으면 살아남는다.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만 있으면 우리의 정체성을 발휘하면서 곧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성기조 한국펜클럽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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