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급한 노인 대책

2005-06-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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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신문에서 한국노인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최근 한국의 노인들의 자살 비율이 OECD 30개국중 1위라는 씁쓸한 보도를 접했다. 이는 급격한 핵가족화의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신병을 비관하거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인구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고령화이다. 2010년에는 70세 이상의 인구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급속한 고령화사회가 현실이라면 노인들의 마음가짐과 의식변화로 우선적인 문제해결을 찾고자한다. 즉 70세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은퇴 후 화려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 80세의 할아버지인 카터 대통령은 ‘노령의 미덕’이라는 책에서 그는 ‘은퇴 이후 생활의 기쁨은 일주일에 골프를 몇 번 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있다’ 며 노인들이 생을 다 할 때까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을 투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현재 지구상에서 카터만큼 화려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그는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년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신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평소 ‘신앙은 나를 활력 있게 만드는 최대의 원천’ 이라고 말해왔다.
1996년에 ‘살아있는 신앙’이라는 책을 발간한 뒤 한 기자의 인터뷰에서 “신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면서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망치의 신학’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성도는 누구든지 망치를 들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한가지 이상의 재능을 주셨다. 그 주신 재능을 어디에다 마지막까지 쓸 것인가 고민할 때 더욱 빛나는 노년의 삶을 보낼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정부와 교회는 노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다.
흔히 “웰페어가 효자”라는 말을 미국에 거주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흔히 듣게 된다.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여하튼 한국 사회에서도 노인들의 생계문제와 관련된 복지혜택에 최우선적인 정책 시행이 시급할 때다.
사실 우리는 미국의 노인 정책과 부모에 대한 효행만큼은 배워야 한다. 미국인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지라도 효행은 우리 한국인만큼은 못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아는 오랜 미국 친구는 바빠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부모님께 꼭 인사를 드린다. 형과 동생들도 번갈아 가며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 물론 미국 사회에서는 부모에게 무조건 적이고 복종적인 의미의 효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듯 부모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효심을 표현할 필요가 절실하다.


입력시간 : 2005-05-20

이춘원(전 뉴욕 퇴계학회 회장)

세상이 점점 혼탁해져 가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남성들을 뒷받침하는 여성들의 ‘넓은 의미의 모성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분위기도, 가정의 분위기도 알고 보면 여성이 좌우한다.
남성들이 사회 전반의 일꾼으로서 활발히 행동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넓은 의미에서의 모성애를 발휘하는 여성들이 근본적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회의 주인 격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이 부정, 부패, 배신에 물든 상태라면 그 근본뿌리가 그들이 접한 모성
애와 사회 전반에 걸친 넓은 의미의 모성애에 결함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전체가 넓은 의미의 모성애를 충분히 발휘하여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미치는 그런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부정, 부패, 배신이 없고, 따라서 선량한 국민만이 사는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남녀평등의 올바른 의미는 결코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동정심이나 양보심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여성은 여성의 특성을 살리며 여성다운 데서 찾아야 한다.
여성다움의 대부분은 자녀에 대한 모성애와 사회 전반에 걸친 넓은 의미의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부와 귀를 이룩하는데 유능한 어머니로 등장하는 것보다는 모성애가 전부인 사랑의 화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 자녀를 옳게 길러내는 길일 것이다. 이룩할 수 있는 부와 귀를 외면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것이 초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미묘해서 후자를 존중하면 전자인 부와 귀가 더 쉽게 얻어질 것이다.
시인 노천명(1913~1957)이 쓴 시중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제목이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초가지붕에 박 넝쿨 올리고/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삽살개는 달을 짓고/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오.
현재의 한국여성이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고개를 젓고 입을 삐쭉거리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 “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오”.
이 얼마나 배포가 크고 풍부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넓은 의미의 모성애로 가득 찬 여인상의 모습인가. 이 시가 남녀평등을 무시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고 여성들의 패배주의를 부추기는 시라고 생각해도 오해이다. 이러한 여성의 모습이야말로 남성과 당당히 겨루어서 부와 귀를 창조할 수 있는 용기 있고 지혜로우며 진정한 모성애를 발휘하여 그 자녀들을, 또 넓은 의미의 모성애를 발휘하여 그 사회를 깨끗하고 명랑하게 하고, 또 그 품속에서 자라고 숨쉬는 사람들은 부정, 부패, 배신을 모르는 일등 국민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이여, 넓은 의미의 모성애를 발휘하는 화신이 되라.

골프와 동포사회


입력시간 : 2005-05-23

강봉희(전 뉴저지 세탁협회장)


어느 날 교통사고로 젊은 사람 하나가 죽었다. 그 젊은이가 염라대왕 앞에 불려갔다. “너는 젊은 녀석이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안된 것 같은데 내가 너를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일주에 다섯 번씩 골프나 치면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하니 대왕이 화를 벌컥 내며 “이놈아, 그런 데가 있으면 내가 당장 가겠다”했다 한다.
예전에는 한인들이 ‘아이들 때문에 이민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골프 치러 이민 왔다’는 동포가 늘어만 간다. 마치 미국에 골프 원수 갚으러 온 것 같이 골프 열풍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니 우려가 앞선다. 남자들 몇 명이 모여 앉으면 당연히 시작이 정치 얘기다. 얘기가 시들해지면 자연히 골프 얘기로 넘어간다. 한참 골프 얘기가 고조되면 한 구석에서 자고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 한 마디 거든다. 이런 때 좌중에 골프 안치는 사람이 있으면 완전히 왕따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분들이 오히려 존경스럽다. 얼마나 바빴으면 그 많은 유혹에서 초연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한인사회에 골프 열기가 너무 지나쳐서 일상 가정생활에도 사업체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골프는 가끔씩 적당히 하면 생활에 활력이 된다. 고달픈 직장에서 탈출, 건강증진, 재충전, 정신휴식 등에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한인들 중에는 모든 것이 지나침으로 해서 여러 부분에 피해를 주는 일이 적지 않다.
골프는 풀밭 위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발로 걷는 혼자서도 혹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골프에 기본정신은 매너와 정직이다. 그래서 흔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라운딩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좋은 매너를 보이면 상대가 감동하고 우호적이고 금방 친분이 생겨 사교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많은 골프장을 가봐도 골프장에 나온 아시안은 거의 90%가 한인들이다. 아직도 중국인이나 일본사람을 만난 기억이 별로 없다. 인구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한국을 능가하는 그들이 왜 골프장에 안 나오는 건지, 못 나오는 건지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한인들이 하는 사업은 대개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다. 세탁소, 네일업, 청과업, 모두 몸으로 때우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 몸이 사업체에 있지 않고 골프장에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주인 하나가 종업원 두 세목을 하지 않는가? 교통에도 흐름이 있는 것 같이 골프도 전체 흐름이 있다. 한쪽에서 정체하면 골프장 전체가 마비된다. 그런데 극히 일부 한인들이 내기 골프 하다가 너무 시간을 끌어 정체를 시켜 뒤에 기다리던 골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그 뿐인가. 내기골프 치다가 열이 나면 큰 소리로 싸운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멀리 건너편 홀에까지 들린다. 골프의 생명은 스코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매너인데 매너 없이 굴어 미국인들한테 인상 찌푸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에서 한인이 한 행동이 곧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연결된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미국이 골프천국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골프는 미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레저이다. 경제적인 면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면에서도 초기 이민자들이 만만하게 덤빌 만큼 문턱이 낮아 보이지 않는 것이 골프다. 때문에 히스패닉계나 다른 아시안은 골프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전에는 주말만 되면 남편들이 골프 백을 메고 나가 주말 과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인까지 골프장으로 향해 집에 아이들만 남아 주말 고아라는 신종어가 생겨났다. 일부 한인들이 골프는 생활의 전부요, 희생을 전부 걸고 몰두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한인은 근면, 성실 하나를 밑천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이 점점 퇴색되는 느낌이기에 기분이 매우 씁쓸하다. 우리들의 주종사업을 타민족들이 바짝 추격해 오고 있는데 그들과 어떻게 경쟁하며 또 경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지락/샬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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