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구공 만한 딸기의 세상

2005-06-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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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 때 저는 꿈이 하나 있었어요. 이 담에 내 집을 장만하면 꼭 뜰에 목련을 심겠다는..”
목련이 지기 시작하던 5월 초순 어느 날, 문학서클에서 꽃에 대한 단상을 주고 받으며 시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 한 중년의 멤버가 말했다. 이어서 그녀가 말하기를,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생각이 싹 가셨어요.”
이유인즉, 아침 출근 길에 차창 밖으로 지는 목련꽃을 유심히 보게 되면서였다고 했다. 그렇다. 목련꽃은 그 끝이 아주 볼썽 사납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누더기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져 죽어 흩어져 있는 꽃잎과,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너덜너덜 죽어가고 있는 꽃잎을 보면 그만 정이 떨어질 만도 하다. 등불을 켜듯 환하게 피어날 때의 귀티 나는 자태와 비교가 되어 더욱 그렇다.
이와 반대로 동백꽃은 통째로 툭 떨어져 깨끗하게 죽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물처럼 후드득.’ 그렇다면 목련을 동백처럼,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고, 절정에 이른 후에 냉큼 떨어져 죽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우리는 농담 삼아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걸 가능하게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학설이 며칠 전에 발표되어 식물학계에서 주목을 받고있다고 한다. 인디애나 주립 대학의 식물학 교수 에스텔 박사가 20여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식물의 성장촉진 유전자를 발동시키는 과정을 밝혀냈다고 한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옥신이라고 하는 식물 성장 촉진 홀몬이 티리라고 하는 단백질과 결합하게 되면 성장촉진 유전자를 발동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응용하면 식물의 성장과정을 변형시킬 수 있고, 그것이 제시하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많은 식물학자들이 흥분에 들떠 있다고 한다. 야구공 만한 딸기도 재배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떠들썩해 한다.
그렇다면 수박덩이 같이 커다란 토마토는 어떨까? 아니면, 째째하게 쬐고만 채송화 꽃잎은 나팔꽃 마냥 널찍하게, 겨울과 봄이 교대할 때 잠깐 선을 보여주곤 시들어버리는 깍쟁이 수선화는 일년 내내 피라 하고, 도도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장미의 가시를 깡그리 없애버리고, 라일락 향기는 쉬지 않고 사시사철 풍기게 하고...
못할 것도 없다. 복제인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또 유전인자를 인공적으로 변형시켜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 베이비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치는 우리 인간이 아닌가. 그런 마당에 그깟 식물쯤이야 마음 내키는 대로 휘저어서 크고, 좋게 바꾸는 것이 대수이런가!
이렇게 뒤죽박죽하고 아리송한 세상을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은 일찌감치 보았나보다. 그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서 그는 생전에 벌써 이렇게 한탄했으니 말이다: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긴 숨을 내 쉬고,’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한숨을 내 쉬고,’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민다’라고.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일으켜주고 몸을 되살려 주는 자연의 인내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터인즉,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영악함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영옥
엔지니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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