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것과 옛것

2005-05-26 (목)
크게 작게
지난주 목요일 나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 국제 예술제 공연에 갈 기회가 있었다. 국제 예술제는 ‘한국 음악제전’이라는 타이틀로 개막되었다. 그 날 밤의 예술제 1부는 한국 전통음악 연주였고, 2부는 한국 전통무용, 5인조 앙상블, 멀티미디어가 어울린 공연으로 관객을 감동시켰다.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와 김응식의 장구 연주로 전통음악 연주는 시작되었다. 그들이 연주한 네 작품은 나의 귀에는 낯설기만 하였다. 첫 번째 연주곡은 ‘밤의 침묵’이라고 하였다. 가야금과 장구가 마치 대화하는 듯한 연주였는데 나는 음률을 이해하려고 주의 깊게 들었다. 프로그램에 설명된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 ‘강한 바람소리’ 또는 ‘은은한 소리’를 감지하려고 하였지만 한국 전통음악에 훈련되어 있지 않는 아메리칸 귀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음악이었다.
모차르트나 바흐 같은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감상할 때, 나는 그들의 섬세한 감수성에 연대감을 느끼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들이 인도하는 음악의 길을 나는 즐기며 따라가고, 음률이 어디로 향하여 가는지를 직감적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전통음악은 달랐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낯선 음악이라 음률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 었다.
중간 휴식시간 후의 공연은 옛것으로부터 새로운 것, 즉 전통에서 모던으로 바뀌었다. ‘제전 III’이라는 타이틀로 무용이 메인 스테이지를 차지하였다. 프로그램에 “제전 III은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삶의 갈망을 담고 있다”라고 작품을 설명하였다.
승무를 바탕으로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계절에 따라 새로 태어나는 변화를 춤으로 보여주었다. 죽음 후 영혼의 여정을 음악과 멀티미디어 내레이션으로, 새로 태어나는 삶을 기쁨과 윤회로 춤으로 표현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실내 교향악 단원으로 구성된 바이얼린, 첼로, 클라리넷, 타악기 앙상블 패러렐 연주와 멀티미디어가 동참하는 ‘제전 III’은 한국 전통적인 춤동작과 현대식 창작 스타일로 만들어진 예술이었다.
나더러 누군가가 ‘제전 III’의 어필을 물어 본다면 멀티미디어의 공헌이라고 말하겠다. 무용가 뒤에 설치된 큰 스크린의 환상적인 영상 이미지들이 감동적이었다. 나의 눈길은 계속 무용가로부터 스크린으로 그리고 무용가로 따라 움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눈길은 스크린에 뜬 멀티미디어 이미지들에 오래 머물렀다. 기러기가 날아가고, 구름이 흘러가고, 물이 흐르는 영상 이미지가 감동적이었다. 무용가의 동작을 그림자로 스크린에 투영하여 변화하는 사계절의 이미지와 배합하였다. 인터액티브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무용가의 동작을 그림자로 지연시키기도 하고 동시상영을 하기도 하였다. 무용가가 움직인 후 얼마 후에 그녀의 그림자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지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공연에 한참 매료되어 현재에 빠져 있을 때 무용가는 마치 주술가처럼 신비하게 스크린에 나타나 천천히 움직이며 과거를 상기시켜 준다. ‘제전 III’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용가가 꽃 속으로 들어가 꽃술이 되어 춤추는 장면이다.
‘한국 음악제전-옛것과 새것’이라는 공연을 보면서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목사이니까 그렇겠지만 나는 모든 일들을 복음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여 깨닫는 사람들을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라고 하셨다. 한국의 과거 전통을 귀하게 여기며 새로운 한국의 미래를 인정하는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작품을 감상하며 새것과 옛것을 꺼내오는 집주인을 생각했다.


<교육학 박사·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