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의 벽 허물고 싶다”

2005-05-17 (화) 12:00:00
크게 작게

▶ 가정의 달 스페셜

▶ 청각장애인 장진석씨 갤로뎃 대학서 석사학위

세계 유일의 농아인들을 위한 대학으로 잘 알려진 DC의 갤로뎃 대학에서 지난 13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는 조그만 경사가 있었다.
외국 유학생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청각장애인들에 관한 학문인 농학(聾學, Deaf Studies)과 미국 수화(American Sign Language)를 전공한 석사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한인 장진석(43)씨.
청각장애인인 장씨는 영어와 미국 수화를 동시에 배워야했고 매일같이 10-15시간씩 학업에 매달려야 했다.
그는 2001년 1월 가족보다 먼저와 자취생활을 했던 첫 6개월을 특히 힘들게 보냈다. 평소 수화 통역을 맡아주던 아내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경제적인 절박함 때문에 점심은 수돗물로 채우기도 했고 생감자를 사과 먹듯이 베어먹고는 며칠동안 설사를 한 적도 있다.
장씨는 그 덕분에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누구보다 청각장애인의 교육과 복지사업을 위해 앞장섰던 때로 가정 일에 소흘했다고 시인한다.
“한국에서는 새벽에 나가 12시가 넘어서 귀가할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미국에 와서 남편으로서나 아빠로서 철이 든 것 같아요.”
장씨는 한국에서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란 바쁜 삶을 살았다.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의 복지부 과장 및 한국농아인협회 이사 등 10여개의 기관과 단체에서 요직을 맡으며 동분서주했다. 한국 수화를 정비하고 표준화하는 일도 주도했다.
장씨가 무엇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일은 일반인들에게 ‘손 말’을 가르치는 것.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의 수화 클래스와 각 대학 수화 동아리 반에서 장씨는 무려 20년간, 3만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장씨는 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면서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이해도 함께 심어주었다.
장씨가 이렇게 열심히 달려온 것은 나름대로의 한(恨) 풀이였다. 본인이 겪은 아픔을 후배 농인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다.
장씨의 역경은 세 살 때 이하선염을 앓으면서 시작됐다. 병원에서 마이싱 주사를 연일 맞은 후에 청각의 90% 이상을 상실했다.
한 살 터울의 동생마저 같은 때, 같은 증세로 농아가 되자 어머니 임경자씨는 그 충격으로 동반 자살까지 결심했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한강에 투신하려는 어머니를 뒤쫓아간 아버지가 간신히 설득했다. 죽을 용기로 다같이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고.
수학교사였던 어머니는 교단에서 물러나 장남과 차남의 뒷바라지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장씨는 서울농아학교를 다니다가 6학년 때 일반 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편입했고 중고교도 일반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공부는 고난의 연속.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도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입술 모양으로 말을 읽어내는 독순술로는 기껏해야 75%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병신 취급받기가 일쑤였다. 청각장애인일줄 모르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친구 어머니에게 뺨을 맞기까지 했다.
그래도 장씨는 부모님의 격려 아래 아무리 힘들더라도 타고난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강의 시간에 그의 유머 감각은 더욱 빛을 발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수화 제자로 처음 만난 아내 정명희씨도 장씨의 그런 점에 끌렸다고.
아내는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10년 넘게 근무하다가 미국에서는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 하면서 짬짬이 파트타임으로 일까지 한다.
현재 메릴랜드 락빌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웃음소리가 항상 넘친다.
딸 보인(11)이와 아들 호중(7)이는 구김살이 전혀 없고 표정이 밝기만 하다.
“친구 생일 잔치에서 보인이는 초대 ‘0 순위’에요.”
남편 장씨의 귀와 입을 13년간 해온 아내는 남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근래에 매일 목격한다고 전한다.
“하루에 한 두 번씩은 호중이와 레슬링을 해요. 그럴 때 남편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요.”
장씨는 이번 여름에는 몽고메리 칼리지에서 미국 수화를, 가을부터는 갤로뎃에서 한국 수화를 가르친다.
이제 된장찌개, 김치국수, 감자볶음 정도는 척척 요리하는 장씨는 철든 남편과 아빠의 자리는 항상 지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장씨가 장차 하고자하는 일은 한국의 농인들에게 희망과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 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장애관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무는 것이 장씨가 평생 하고싶어하는 일이다.
<권영남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