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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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가족사진

2005-05-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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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찌나 사진을 많이 찍어댔는지 거의 일주일 단위로 앨범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횟수가 줄어들어 초등학교 때부터는 아예 기록조차 없더니 세월을 성큼 뛰어 넘은듯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늙어버린 부부모습으로 갑자기 앨범 내용이 바뀌었다.
얼마나 생활에 쫓겼는지 수년간 필림을 쌓아두고 현상조차 안한 적도 있다. 어느날 큰맘 먹고 맡기기는 했는데 반년을 넘게 찾아오는 것조차 잊어 버렸었다. 폐기 처분하겠다는 경고장을 받고는 부랴부랴 가까스로 수년간의 추억을 담은 사진들을 되찾아왔다.
재작년 디지털 카메라를 사고부터는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데 언제 햇빛을 보게될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더가기 전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담긴 가족 사진을 남기기 위해 드디어 결심을 행동에 옮겼다.
대장간의 칼이 녹슨다는 말이 딱 맞다. 가뜩이나 잘생긴 배우들 더 멋있게 보이라고 주름살 지우고, 몸은 아예 다른 사람과 교체를 하는 등 소위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화 포스터 만드는 게 나의 직업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가족들은 변변한 사진 한장 없으니 부끄러울 노릇이다.
사실 사진관에 가서 찍으면 간단할 터인데 “바뻐”를 외치는 식구들을 하루 날 잡아 모두 모이게 해서는 정장을 시키고 사진관으로 향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각종크기의 예쁜 액자들을 열 개 쯤 샀다.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 중 액자의 분위기에 맞는 것을 골라 액자 크기에 맞추어 합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로 사진을 찍다 보니 내 사진은 거의 없는데 그나마 얼마 있는 것도 하나같이 폭격 맞은 것 같은 모습밖에 없으니 엄청 공들여야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화 시킬수 있었다.
아무리 할리웃의 여배우 모습에 길들여 있다 하지만 나의 모습은 실력을 총동원해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전체적으로 길고 홀쭉하게 만들고, 얼굴만 따로 10% 쯤 줄였다. 입 주위의 늘어진 주름을 지우고 이마, 눈 주위를 다림질 하니 웃음이 절로 킬킬 나 온다.
눈꺼풀이 쳐져 거의 감고 있다시피 하는 눈까지 치켜 뜨게 하고 화장을 좀 더 했더니 10년의 세월이 훌쩍 넘는다. 한결같이 정면승부를 하는 남편의 얼굴은 제일 잘 나온 것으로 떠내어 젊음을 적당히 불어 넣은 뒤 각각 다른 사진에 일제히 넣었다.
사진기만 들이대면 장난기가 발동하는 두 장정 아들들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없으니 눈 코 입 팔 다리까지 떼내는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했다.
하루종일 열심히 작업을 하여 드디어 멋진 가족사진을 완성해서 퇴근한 남편한테 자랑스럽게 보이자 그의 한마디. “우린 뭐 먹냐? 하라는 저녁은 안하고…”
옆의 아들녀석은 연신 천장을 올려보며 “ 그거 가짜 가족 사진이야”

애니 민/다이아몬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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