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과 부부관계

2005-05-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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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동포들의 이혼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년 고객들의 세금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제 이혼은 보통 일을 넘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혼사유도 다양하지만 특히 돈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길래 사랑하던 부부를 갈라서게 만들고 소중한 가정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지… 올해 찾아온 고객 중에서 그 실례를 살펴보았다.
최 선생은 마켓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고 그 부인은 회사에 다니던 맞벌이 부부였다. 그런데 부인이 회사로부터 상여금으로 받은 주식이 쌓여 수십만 달러에 이르자 돌연 이 돈은 자기 몫이므로 다른 가족을 위해 쓸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여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이 그럴 줄 몰랐다고 분개하면서 새로 장가를 갔다며 큰 복수나 한 것처럼 젊은 새 부인의 자랑을 들려주었다.
안 선생 역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인데 평소 돈관리가 철저하지 못했다. 자주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그 빚이 10여만 달러에 달하자 부인이 남은 재산이라도 지키겠다며 얼마간의 돈을 떼어주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일감도 마다하고 매우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전통적으로 한인가정은 남편은 밖에서 벌고 부인은 집안에서 가사 일을 하는 것이었으나 이민생활은 그 틀을 완전히 바꿔 놓아서 오히려 부인의 경제력이 더 커지다 보니 매사를, 그리고 이혼의 주도권조차 부인이 좌지우지하는 세태가 되었다.
필자도 부부동반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거의가 부인의 의견에 따르거나 심지어는 끌려가는 모습이어서 늙어서 인지, 부인의 위세가 높아져서 인지 한동안 허탈감에 헤맬 정도이다.
‘돈이 양반‘이라는 말처럼 품위 있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며 ‘돈이 장사‘라고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아니 영원히 돈이 가정의 귀중함을 뛰어넘지 못하리라 믿고 있다.
요즈음 한국의 TV드라마는 돈 많은 아들이나 딸과 맺어지는 포맷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그런 신데렐라 풍조가 앞으로 가정을 이룰 젊은이들의 의식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심히 염려 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가사를 전담하는 부인의 연봉은 오버타임을 포함해서 13만 2천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부인의 노고를 짐작케 하는 수치지만 적어도 가족 간에는 더욱이 부부간에는 서로의 평가를 돈으로 저울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살펴볼 때 돈 문제를 함께 걱정하는 부부는 가정을 유지할 수 있어도 부부가 네 것, 내 것 따지는 가정은 결국 깨어지고 만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황금만능 시대라 할지라도 모든 일이 돈으로 다 해결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돈으로 불행해지는 가정도 많은 것이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지만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돈 문제로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당사자의 개인적 문제이다. 남은 삶속에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바로 단 한번뿐인 인생이기에 그 결정은 매우 신중하고 현명해야 할 것이다. TV드라마와 현실은 아주 다른 것이다. 남도 다 하는 것이니까 하는 짧은 생각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면 두고두고 돌이킬 수없는 회한을 씹게 될지 모른다.
며칠 전, 수영장 청소를 하는 오 선생이 찾아왔다. 부인이 난치병으로 오래 동안 치료를 받는 관계로 그 비용 충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부인과 친지들은 집과 재산을 보존하면서 메디칼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형식적이나마 헤어지라고 권하지만 자기는 모든 것을 잃어도 부인과의 이혼만은 결코 고려치 않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오 선생이 갑자기 매우 큰 사람으로 느껴져 그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조만연
수필가,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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