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몰랐던 ‘멕시코’

2005-05-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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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왕복 항공료를 218달러에 세일한다는 이메일을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보내온 날 남편과 나는 와 너무 싸다를 연발하다 말나온 김에 한번 구경 가보자고 나서게됐다. 전반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떨어졌어도 멕시코는 아직 달러가 대접을 받는 곳이어서 가볍게 떠날수 있었다.
동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두학기 익힌 남편의 스페인어 실력을 믿고 느긋한 기분으로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어 있었다. 호텔에서 얻은 지도 한장과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관광 정보를 들고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그의 스페인어 보다는 나의 전재산인 막강한 눈치가 훨씬 유용함을 곧 깨닫게 되었다. 음식을 시킬 때도 그의 스페인어 보다는 웨이터의 영어실력 덕분에 무사히 주문을 마칠수 있었고 그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쓸모있는 말을 안가르쳐 주었다고 툴툴거렸다.
다음날 시내 주요 유적지를 도는 순환 버스를 타고 본격적 관광을 시작했는데 유럽풍의 동상과 분수대, 기념관 등을 보며 흥미 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기 시작하다가 조칼로 광장에 당도하자 그만 와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우리는 단순히 싸게 외국 여행을 한다는 데에 매력을 느껴 얼떨결에 떠난 여행길이었을 뿐 무엇을 볼수 있을지 구체적 예상을 못했었기에 도시 곳곳에서 풍겨나오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깊이에 솔직히 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인류의 기원과 발달 과정에 맞춰 멕시코 문명의 변화를 알기 쉽게 정리해 전시해 놓은 국립인류학 박물관에서는 아즈텍 문명의 큰 스케일과 굵은 선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그곳 전시물을 통해 멕시코 안에 적어도 수십개의 대형 피라미드가 널려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시내 곳곳에 온갖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찾아 보기란 불가능했지만, 찾아간 곳들을 모두 수준 높은 전시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남들이 아무리 좋다는 집에 가봐도 별로 탐이 난적이 없었던 내가, 멕시코의 대표적 여류화가인 프리다 칼로가 살던 집에 가서는 건물 구조와 정원 등이 맘에 너무 꼭 들어 한참을 넋을 놓고 그집 마당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간 멕시코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살았다. 멕시코 하면 불법이민을 떠올리는 정도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려는 생각은 없이 타코와 버리토를 먹는 것에서 멕시코에 대한 이해가 끝난다. 멕시코 여행도 대부분 바닷가 휴양지를 방문해 미국에서 처럼 놀다가 오는데 만약 한번쯤 멕시코시티 와 유적지들을 둘러본다면 멕시코인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천 5백만의 인구가 북적대며 사는 엄청난 대도시. 산꼭대기 까지 빼곡히 들어선 초라한 집들과 무질서한 거리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자랐던 서울의 60년대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가 겪었던 가난을 지금 겪고 있는 멕시코인들을 우리는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빛나는 문화 유산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한인 커뮤니티가 막대한 히스패닉 커뮤니티와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이다.
멕시코인들은 우리 한인들의 고객이거나 고용인 또는 이웃으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한인들의 다음 휴가지는 LA에서 세시간 남짓이면 갈수 있는 멕시코시티를 택해보면 어떨까.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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