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목민’으로 사는 즐거움

2005-04-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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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눈금

프랑스 지성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정착민의 시대는 서서히 끝나고 국경을 허물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사는 본격적인 유목민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그는 저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말하기를 부유한 사람은 즐기기 위해 여행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이윤기씨 또한 스스로를 ‘호모 노마드, 21세기형 유목민’이라고 말한다. 여러 대륙을 여행하면서 십수년을 보냈고 잡지사 기자, 번역가, 대학 연구원, 신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자, 소설가 등 다양하게 직업을 바꾸면서 살아온 자신의 전력이 바로 전형적인 호모 노마드라고 이 에세이 ‘시간의 눈금’에서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직장에 매여 은퇴할 때까지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평생직장의 꿈을 간직하고 살기에는 세상과 환경이 변해버렸다. 소설가 이윤기는 주변 여건과 관심에 따라 직업을 바꾸었던, 또한 여행하며 유목민처럼 옮겨다녔던 삶의 경험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점점 질투와 선망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현대인들 누구나 꿈꾸며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삶, 직업을 자주 바꿔가며 사는 삶, 누구든지 허락된다면 그렇게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삶을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호모 노마드’적 삶을 꿈꾸어 본다.
아니 우리 이민자들은 이미 호모 노마드라 말할 수 있다. 고향을 등지고 이땅에 와서 그때그때 여건에 따라 직장을 바꾸며 살아야하는 우리들이야말로 ‘호모 노마드’와 다름아니다. 이 책을 통하여 노마드적인 이민의 삶의 정체성을 알았고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이민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지은이의 전방위적인 지적 편력, 신화와 사람과 장소, 문학과 일상의 편린 등 저자 특유의 툭트인 시각과 구수한 말글로 플어낸 눈부신 사유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도록 한다.
고향 언덕에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남기고 싶어 햇볕에 그을리며 나무를 심는다고 그는 근황을 전한다. 그러나 언제 또 호모 노마드가 되어 훌쩍 떠날런지 모른다. 아직도 그의 ‘시간의 눈금’은 여유가 많은듯하기에.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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