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을 다시 생각한다
2005-04-19 (화)
우남(雩南) 이승만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가 미국 땅에 첫 발을 들인 것이 고종의 밀서를 들고 루즈벨트 미 대통령을 만나러 왔던 1904년 겨울이었으니, 올해로 역산해보면 정확히 반년 초과하는 만 100년 전 일이다.
시점으로 따져 한민족의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이 시작되고 나서 1년 후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껭 이민이 시작되기 2년 전이다.
이승만의 신분은 그러고 보면 초기 한국 미주 이민이다. 또 그가 루즈벨트와의 면담에 실패 후 그대로 미국에 남아 조지 워싱턴 대학에 진학, 이어 하버드 대(석사), 프린스턴 대(박사) 에 진학한 걸 보면 그는 초창기 한인 미주 유학생 겸 재미 동포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 첫 대통령은 알고 보면 재미 동포에서 배출됐다는 말이다.
나는 요즘’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일월오악도란 조선조 임금님의 용상 뒤를 장식하는 그림으로, 해, 달, 산, 솔, 물 등 왕실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물체를 역시 홍, 청, 백, 녹, 회색의 다섯 가지 색상으로 그린 일종의 민족전통 무늬로, 구 대한제국의 황실을 상징한다. 서울 교육대학교의 안천 교수가 쓴 책으로, 이 책에서 이승만은 이렇게 묘사되어 나타난다. “그는(대통령이 된 후) 고궁에 가면 이따금 임금님의 용상에 앉아보며 흡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이래서 임금 노릇도 할만한 것이군!’”
용상에 대한 이승만의 ‘눈독’을 더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고맙게도 나의 글까지 인용했다. 20여 년 전 내가 이승만의 분신에 가까웠던 경무대의 정치고문 올리버 박사(미국인)를 인터뷰 후 한국일보에 실었던 육필로, 필자인 나마저도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글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겸 고문이었던 올리버 박사를 서울 메디칼 센터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가 (옛 주인에 관해)들려준 토막 평전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이승만은‘민주주의의 신봉자였음엔 틀림없으나, 다른 한편 자신을 늘 이씨 왕가를 계승할 인물로 여긴 분이었다’”
저자는 이승만의 정치 스타일이 진작부터 이중 성격적이었음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20여 년 전 같으면 나 역시 공감했을 부분이다. 허나 지금 생각하니 이 점에 관한 한 우리 역시 상당부분 이중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 40만 돼도 인생관을 바꾸기가 힘들다. 하물며 나이 70이라는 노인으로 귀국, 권좌에 오른 이승만에게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 체계가 진작부터 공존해 왔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 체득한 의회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의 신봉이라는 하나의 가치체계와 100년 전 29세의 나이로 미국에 첫 발을 들일 때까지 그를 지배했던 이조 왕조라는 앙시앙 레짐 지향 체계가 진작부터 공존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양면적 가치 체계의 혼재는 아시아 여러 나라 지도자한테서도 공통으로 감지된다. 말레이지아를 20여년간 번영과 공포의 두 수레바퀴로 이끌어온 마하티르 전 수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싱가포르를 건국부터 40여 년간을 역시 법통과 공포로 통치해 온 이광요 전 수상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이등휘 전 총통도 같은 반열에 속한다. 자칫 독재로까지 분류되는 강력한 리더십,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국민과 민주주의 제일을 표방하는 숨겨진 카리스마가 혼재했던 인물들이다.
이승만을 포함한 네 지도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모두가 식민지 출신이라는 점, 둘째는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 그 나라 국부 또는 중흥자로 추앙 받아왔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모두 그 나라 재외동포 출신이라는 점이다.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는 캐나다로 이민가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다 귀국, 집권에 성공한 지도자다.
이광요는 어려서 영국에 유학, 귀국 후 그 나라 공산주의 준동을 척결한 싱가포르 국부다. 대만의 이 등휘 전 총통 역시 대학시절부터 미국에 유학, 클린턴과는 그 때부터 교분을 쌓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측 이승만의 등장이 제일 빨랐고 나머지 셋은 후발주자였다는 점이다.
머지않아 우리에게 다시 한번 한번 재외동포 출신 지도자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쟎은가. 최근 국내외에 활기를 띄고 있는 재외동포 참정권 문제가 내게 던지는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이승만을 새삼 다시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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