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악과의 싸움

2004-1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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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뉴욕타임스 1면에 내 눈길을 끈 사진이 하나 있었다. 이라크 총잡이들이 마스크도 하지 않고 바그다드 백주 대로에서 선거 운동원들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다. 운동원들은 차에서 끌려나와 길 한복판에 팽개쳐졌다.
한 사람은 팔을 뒤로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총잡이들은 이미 총을 쐈거나 쏘려는 참이었다. 나는 처음 이 사진을 화면 전체 크기로 확대해서 봤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악의 얼굴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문제가 많지만 거기 무엇이 걸려 있는가 하는 점은 분명하다. 이 사진 한 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준비하는 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이 사진에 나온 이라크 총잡이들이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며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이라크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수니파 소수계는 이번 선거에 참여하라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있다. 존스 합킨스 대학의 외교 전문가인 마이클 맨델바움은 “이라크 반군은 진정한 파시스트며 식민주의자고 제국주의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를 힘으로 지배해 석유로 번 돈을 자신들이 가지려는 극소수다. 이제 이들의 정체를 분명히 할 때가 됐다.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건, 그동안 잘못 운영돼 왔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어야 했건 이 전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변함이 없다. 이는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려는 사람들과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극소수 분자와의 전쟁이다. 그게 반군의 진면목이다. 반군 자신들도 이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시 행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을 이용, 부시에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정의의 용사로 봐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좌파와 유럽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부르짖는 자치권을 이라크인들이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같이 이라크인들을 살해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병사들의 고결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중요한 일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널드 럼스펠드의 잘못된 전쟁 운영방식과 딕 체니, 조지 부시, 그리고 몇몇 소수를 제외한 공화당이 이를 묵인하는 바람에 전쟁에 질지도 모른다. 많은 보수파들은 럼스펠드를 파면해 리버럴들을 기쁘게 하느니 차라리 전쟁에서 지고 말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랍 우방들은 이라크에서 자유 선거가 열리면 자신들도 같은 압력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수니파가 집권하던 나라에 시아파가 권력을 잡는 것이 싫어서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무력함 때문에 바보가 된 유럽인들도 이라크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돕느니 미국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과거 여러 차례 그랬듯이 이라크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다. 이번 주 이라크를 방문한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 제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든 간에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테러와 민주주의 사이의 전쟁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쪽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밝은 미래를 막기 위해 살인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토마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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