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 일

2004-12-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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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나의 나이는 쉰 네 살이다. 이 글을 신문에서 읽을 때 나는 쉰 다섯 살이 될 것이다. 또 한번의 생일이 왔다가 갔다. 나는 크리스마스 전날 태어났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이 나의 이름을 ‘크리스’라고 지어주셨다.
나의 생일을 알게 된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자라오면서 생일날이 크리스마스와 겹쳐 손해를 많이 보았겠다”라고 동정을 한다. 그들 말이 맞다. 나는 12월24일날 생일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생일 주인공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왜냐하면 형과 동생들도 12월25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의 두 번의 생일을 한국 시골에서 보냈다. 이 두 번의 생일날을 나는 다른 날과 별로 달리 지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처럼 개인의 생일파티를 하며 큰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 친구들에게 “오늘이 나의 생일이다”라고 말하였을 때, 그들은 마치 내가 “밖에 눈이 오고 있다”라고 말하였을 때 하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도 “축하합니다”라거나 “생일선물을 무엇을 받았느냐”라고 인사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생일을 어떻게 기념하는가 하는 방법이 동서양의 문화를 구별하는 표시가 되는 것 같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개인마다 일년 중 자기 생일을 맞이하여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 생일날의 가능성이 365날이다. 한국에서는 모두 함께 같은 날 나이를 먹는다. 예를 들어 호랑이띠(또는 원숭이, 또는 토끼, 또는 용)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함께 똑같은 순간 다음해로 들어간다. 마치 거대한 팀이 떼를 지어 다음해로 향하여 움직이는 모습이다.
나의 팀은 소띠이다. 소띠인 모든 나의 친구들이 함께 한 팀이 되어 다음해로 향하여 달려가서 2005년 2월9일 닭띠 마크를 넘고 들어간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한국 나이로 쉰 일곱 살이 될 것이다. 아마 그래서 동양에서는 음력 설날이 가장 큰 명절인지 모른다. 일년 365일을 하루씩 분담 받아 소그룹으로 축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 모두가 한날 함께 생일축제를 하는 셈이다.
생일 얘기를 하니까 나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예전에 누가 쉰 다섯 살이라고 하면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우리 인간은 자기보다 다섯 살 위인 나이를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늙은 나이의 시작이 60세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2006년이 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쉰 다섯 살이 되면 즐기게 될 몇 가지 혜택이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의 ‘시니어 메뉴’는 55세 이상부터 해당된다. 시니어 음식은 적은 양에 따라 적은 값을 받는다. 내가 자주 가는 철물상에서도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에게 디스카운트를 하여 준다. 지금부터 나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면 5%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것은 나이가 많아질 수록 한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로 우리가 이사온 것이 1972년이었던가, 1982년이었던가, 아니지 1992년이었지”하는 식의 햇수를 단위로 하여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렸을 적에는 하루하루가 빨리 지났지만 햇수는 영원처럼 천천히 갔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는 천천히 가는데 일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나이는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세첼 페이지라는 유명한 흑인 야구선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시절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날도 모르고 태어난 해도 기록되지 않았다. 세첼 페이지는 나이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이 몇 살이었는지를 모른다면 몇 살이 될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추측된 나이로 세첼은 59세 때까지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였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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