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실패 메달’

2004-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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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자유 메달 서훈자들 사진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자니 케릭은 어디 갔을 까 싶 다. 첫 수상자는 조지 테넷, 전 CIA 국장이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가진 게 분명하다고 부시 대통령을 확신시킨 인물이다.
다음은 L. 폴 브레머 전 이라크 행정관. 이라크 군대를 해산시키고 바트당 공무원들을 모조리 쫓아냄으로써 오늘날 이라크의 혼란상에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마지막은 퇴역 장성인 타미 프랭크스. 미국의 이라크 파병 계획을 만든 사람, 다시 말해 군대를 너무 적게 파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들이 청색 벨벳 리본에 걸린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들이 저지른 실패들이 떠올랐다. 이들은 모두 전국을 돌며 재직 중 경험한 일들을 강연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책 낼 요량으로 알맹이들은 챙기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서훈자는 버나드 케릭이 되지 않을까?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 능력이 아닌 것 같다. 탁월함은 물론 아니다. 충성심과 아부 같은 게 아닐 까 싶다. 그런 거라면 케릭도 넘치게 가지고 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였다. 부시가 “버니”하고 부르니 케릭은 가던 발걸음을 딱 멈추고 서서 “네, 각하”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자넨 좋은 사람이야”하고 말했다.
케릭이 조국안보국 수장으로 지명되었던 것은 이런 남성다운 친근감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를 좋아했다. 그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타입이다. 엉망의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마음 잡고 승승장구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그는 루디 줄리아니가 천거한 인물이다. 줄리아니 역시 강인한 성격이자 그 자신이나 남들에 대한 판단 미스로 곤경에 처하는 인물이다.
대통령은 메달 수여에 앞서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해봤어야 했다. 우선 테넷은 무능했다. 그는 9.11 테러 공격을 막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역사적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막는데도 실패했다.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 발견에 실패한 일이다.
프랭크스나 브레머는 두 사람이 동시에 메달을 탈수는 없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귀국한 이래 브레머는 미국이 이라크에 충분한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내내 말했다. 그래서 약탈과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에 지상군을 충분히 파병하지 못하게 한 장본인은 프랭크스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 메달을 받아야 할까? 답은 둘다 아니다 이다.
백악관의 메달 수여식은 조지 W. 부시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도 실패도 문제가 되지를 않는 부조리한 면이 있다. 대량 살상무기 제거가 목적이었던 이라크 전쟁은 이제 중동에 민주주의 뿌리내리기 전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자신이 책임을 안지니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날로 늘어나는 미군 사상자, 이라크 국민들이 겪는 참상, 높아지는 내란 가능성,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오사마 빈 라덴,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전쟁을 하는 광기 등 실패의 면면 속에 상을 주는 일을 보자니 구 공산주의 국가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능력자들이 메달을 받고 명백한 사실들이 부인되던 나라들이다. 그러니 버나드 케릭이야말로 대통령 메달을 탈 인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리처드 코헨/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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