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엉클 샘’과 맞서기

2004-12-14 (화)
크게 작게
이스라엘과 아랍이 1973년 무력을 총동원해 ‘진검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팽팽한 긴장과 견제 관계 속에서 세계를 주무르던 미국과 소련은 휴전을 촉구했다. 이미 두 차례나 깨진 휴전이지만 달리 기발한 방안이 없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10월24일, 닉슨 대통령에게 양국이 군대를 현지에 보내 싸움을 말리자는 내용의 통신을 띄웠다. 이 통신에는 또 다른 내용이 첨가돼 있었다. 미국이 파병하지 않더라도 소련은 군대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투 현장에 군대를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소련의 파병 다짐을 묵인할 수도 없었다.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사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음날 아침 백악관 긴급회의에서 닉슨은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미군의 준비태세를 ‘컨디션3’로 격상하기로 했다. 그러자 소련은 신속하게 파병 계획을 철회했다.
이 전쟁에 미국과 소련이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지만, 워싱턴은 모스크바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소련과 냉전체제를 이끌었던 미국은 앙숙 ‘북극 곰’에 대한 견제에 익숙했다. 한치의 틈도 보이려 들지 않았고 손톱만큼의 손해도 보려 하지 않았다. 누구이건 간에 견제대상에 대한 ‘엉클 샘’의 예민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멋진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동아리 멤버라도 울타리를 벗어나면 엉클 샘은 가차없이 회초리를 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져 1971년 붕괴하기까지 4반세기 동안 국제금융체제의 근간을 이뤘던 브레튼 우즈 체제 아래서 영국, 프랑스 등 참여국들은 통화안정을 위해 자국통화를 달러에 연계시켰다.
한동안 잘 나가던 이 체제가 흔들렸다. 1956년 7월26일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 게 발단이었다. 협상이 실패하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10월31일 이집트를 침공했다. 미국이 반대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를 장악하고 나세르 정권을 전복시킬 심산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미국은 11월5일 영국의 파운드화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영국 재정이 휘청했다. 미국은 영국이 유엔 결의안에 따라 철군하지 않으면 파운드화를 계속 팔고, 국제통화기금에서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했다. 재정 위기에 봉착한 영국은 더 이상 무력 시위를 할 수 없었다.
하루만에 영국은 백기를 들었다. 철군을 명령한 것이다. 프랑스도 대안이 없었다. 이집트에서 군대를 뺄 수밖에 없었다. 엉클 샘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내 식구’라도 궤도를 벗어낫다고 판단되면 어김없이 매를 든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역사를 들추었지만, 적이든 동지든 도전자는 반드시 응징하는 엉클 샘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나라뿐 아니라 특정 인종이나 개인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대든다 싶으면 꼭 본 떼를 보여준다. 테러와의 전쟁은 ‘잠재적 불신 세력’에 대한 경계의 고삐를 죄고, 재정적자는 ‘예산 누수’에 철벽을 쌓게 한다.
아랍 출신뿐 아니라 소수계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전반적으로 예전 같지 않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느슨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미국 건설에 동참하겠다던 이민자라도 법을 어기고 정부의 ‘주머니’를 탐하면 엉클 샘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철퇴를 가한다.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 표지에 등장하는 ‘칼 든 군주’의 모습과 작금의 엉클 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건강상태와 소득을 허위보고 해 수년간 정부로부터 5만여 달러의 베니핏과 현금을 타낸 혐의로 한인 자영업자가 기소됐다. 상황에 따라 중형에 처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적자 살림살이에 신경이 날카로운 엉클 샘을 건드린 것이다. 웰페어 사기는 한인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부다. 이밖에도 한인사회에 만연된 몇몇 탈법 편법 행위가 있다. 소수계에 관대하고 위법 단속에 성긴 그물을 사용했던 과거의 엉클 샘을 연상하면 시대착오적이다.
어느 시기든 법을 어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법 집행이 깐깐하고 재정상태가 나쁠 땐 언감생심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작은 것을 훔치려다 큰 것을 잃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어서는 안 된다.

박 봉 현 <편집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