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럼스펠드가 혼이 났다. 대통령이 아니라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는 장병들로부터다. 그들 중 일부는 미군이 생명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데 참다못해 불만을 터뜨린 것 이다.
럼스펠드는 정작 이라크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40마일 떨어져 있는 진입로에 마련돼 있는 캠프 뷰링에서 장병들과 만났다. 이곳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병사 뷰링의 이름을 딴 곳이다.
거기서 그는 한 병사가 “차량을 보호할 장비가 없어 쓰레기 매립장을 뒤지며 쇠조각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하자 짜증스런 목소리로 인상을 쓰며 “지금 있는 군대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차갑게 대답했다.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 속에 시작된 전쟁을 하며 죽어 가는 병사에 대한 대답치고는 형편없는 답변이다. 미군이 필요한 모든 신체보호 장비를 갖게 될 것이라던 대통령의 선거 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미군 장병들은 전투는 조금만 하면 되고 초컬릿과 꽃과 이라크인의 환영을 받을 것이란 말을 믿고 이라크에 갔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충분한 병력이나 장비 없이 길고도 야만적인 게릴라전에 휩싸여 있다.
국방부의 네오콘들은 이라크 민주화가 손쉽게 이뤄질 줄로 생각했다. 럼스펠드는 이라크 반군의 민족주의 성향과 규모를 무시하고 이들을 경시했다. 한번도 전쟁에 나가보지 않은 관리들의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도 없이 미군을 게릴라전에 내모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럼스펠드는 어떻게 유임되게 됐을까. 그는 선거유세 중에는 과감한 군사작전을 펼 수 없기 때문에 선거가 끝난 후 한번 더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불편한 사실보다는 기분 좋은 픽션을 좋아하는 부시는 승낙을 한 것이다.
부시는 월남전 때 군복을 입고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미국인들에게 이라크에 가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다. 잘 하는 짓이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