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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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추억

2004-12-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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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락방을 정리하면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을 때 사용하였던 아주 오래된 교과서를 발견하였다. 누렇게 퇴색된 책 겉장에 ‘New Companion to English’라고 쓰여진 중학교 1학년 교과서이다. 발행 날짜가 1965년이라고 기록되었는데, 내가 1973년 제천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사용한 책이다. 아마 그 시대에 중학교를 다녔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문교부가 검증한 이 교과서로 영어를 처음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 속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년의 이름은 톰이고 소녀의 이름은 제인이다. 제일 첫 번째 교과제목이 “This is a Pen”이다. 두 번째 교과제목은 “Is this a Desk?”이고 세 번째 교과제목은 “This is not a Table”. 나는 이 내용을 가르쳤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수업시간에 가르치던 중학생들을 모두 일어서게 한 후, 한 학생 앞으로 가서 “Is this a pen?” 하고 물으면 학생들은 “Yes, that is a pen.” 하고 큰소리로 합창으로 응답한다.
열심히 큰소리를 내어 영어를 배우던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교실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면서 학생들에게 “What is this?” 하고 지적하며 물으면, 학생들은 교과서에 없는 말을 배우면서 깔깔 웃었다. 예를 들어 ‘손가락’ ‘배꼽’ ‘눈썹’ ‘엉덩이’ 같은 말을 영어로 응답하였다.
‘New Companion to English’ 교과서에 서른 셋의 레슨이 있다. 제일 마지막 레슨 제목은 ‘크리스마스’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이 교과서로 영어를 배웠다면 미국의 가장 큰 축제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을 것이다.
이 교과서를 쓴 저자들 생각으로 한국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다음 여덟 가지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나 보다. (1)12월25일이 크리스마스이다. (2)그리스도의 생일이다. (3)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일을 가지 않는다. (4)우리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서로에게 말한다. (5)우리들은 저녁 만찬을 하고 노래와 게임을 한다. (6)크리스마스 트리로 집을 장식한다. (7)친구들과 선물을 교환한다. (8)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다.
영어 교과서에 소개된 크리스마스 축제는 사실을 적당히 설명하여 주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이고 미국사람들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가를 설명하여 주지만 크리스마스 매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영어 교과서 33과에 설명된 크리스마스는 마치 친한 친구의 사망기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망기사에 기록된 친구의 약력이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을 나눈 사람들에게는 친구에 대한 많은 추억이 있다.
나로서 크리스마스는 나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볼 때 나의 기억 속에서 매듭으로 사용되어지는 연례행사와 같다. 가끔 나 자신의 기억력에 도전하기도 한다. 일년 전 크리스마스에 내가 무엇을 하였더라? 1990년 크리스마스를 어디에서 보냈는지 기억할까?
내가 기억하는 첫 크리스마스는 1953년 크리스마스이다. 네 살 때이다. 그 해 크리스마스 때 찍은 사진을 볼 적마다 나는 그 날 선물로 받았던 장난감 자동차 촉감을 기억한다. 자동차를 보관하라고 아버지가 나무로 만든 차고를 나와 동생에게 주었을 때, 그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내가 나의 청혼을 받아들인 잊지 못할 1973년 크리스마스를 기억한다. 하마터면 우리가 서로 다른 길로 가버릴 뻔한 비참한 크리스마스날도 기억한다. 외롭게 혼자 지냈던 크리스마스도 기억하고 온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낸 크리스마스도 기억한다.
영어 교과서 33과에 크리스마스의 사실이 설명되었지만 크리스마스 매직은 묘사되지 못하였다. 나처럼 50번 이상의 크리스마스 계절을 경험하였다면 크리스마스 캐롤, 냄새,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만 들어도 멀고 가까운 과거로부터의 추억이 떠오른다. 메리 크리스마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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