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의 서광

2004-12-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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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흘러나오는 뉴스가 모두 나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1월 30일로 예정된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지도 불확실하며 반군이 계속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주간 비관론의 기세가 수그러든 것만은 분명하다.
추수감사절 전주 이라크 서방 채권단이 빚의 80%를 탕감해주겠다는 뉴스만 해도 그렇다. 이 중에는 말썽을 부리던 독일과 프랑스도 들어 있다. 케리가 당선됐더라면 크게 다뤄졌을 이 소식은 부시의 시종 제임스 베이커 작품이란 이유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팔루자 함락 후의 고요함도 그렇다. 민간인을 포함 수천 명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됐는데도 이라크 국민들은 들고일어나지 않았다. 이라크 국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선거가 잘 치러지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수니파와 바트 잔당으로 구성된 반군이 미군에 의해 박살나는 것을 괘념치 않고 있다. 이라크 국민의 80%가 민주화를 지지하는 것이 지금 이라크의 현실이다.
미국은 수십 년 간 이라크를 통치해 온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반감을 이용함으로써 대체로 수니파로 이뤄진 반군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팔루자가 함락되는 동안 시아파는 조용했고 쿠르드족 일부는 작전에 참여했다. 이 방식에는 위험도 따른다. 자칫 하면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2,210명의 이라크 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내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한 사람이 2/3나 됐다.
진짜 좋은 소식은 반군 지도자 알 자르카위의 다급하고 분노한 목소리다. 그는 테입을 통한 음성 메시지에서 성전을 돕지 않는 회교 지도자들을 맹공했다. “너희들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리를 적에게 넘겼다. 성전에 참여한 용사들을 돕지 않아 수십 만 명이 이교도의 손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별로 자신감 넘치는 말은 아니다.
지난 주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주둔 군 수를 15만 명으로 늘렸다. 선거를 보이콧하겠다던 일부 쿠르드와 수니파 정당들이 철회 의사를 밝혔고 수니파 대통령인 알 야웨르도 선거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화가 모멘텀을 얻고 있다.
재건 자금도 마침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고 실업률은 줄고 있으며 전력 생산도 전후 최고 수준이다. 국민 1인당 소득은 2003년 500달러에서 올해 780달러로 올랐고 시아파 반군 지도자 묵타다 알 사드르도 선거에 참여하기로 했다. 수니파들이 소외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는 새로 얻은 자유를 환영하고 있다.
아직도 이라크 민주화가 성공할 확률은 작다. 부시가 이라크 점령 계획을 잘못 세워 시행착오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부시의 고집이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보고 있다. 선거를 치르면 새로운 이라크가 잘 자랄 것인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여론 조사는 대다수 이라크 인이 선거에 참여할 것이며 65%가 미래를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도 이들 편에 설 때가 됐다.

앤드루 설리반/ 뉴 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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