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어진 기회 살리자

2004-1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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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 실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중동에서 가장 유능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부시와 유엔이 제안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울 능력이 있었음에도 아라파트는 테러리즘을 용인하고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이를 좌절시켰다.
그의 추종자들과 달리 그는 독재적이고 부패했으며 거짓말을 잘 하고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중동 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됐다. 앞으로 당장은 혼란스럽거나 그의 후임 자리를 놓고 장기간 폭력적인 권력 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아메드 구레이아와 마무드 압바스는 온건한 인물들이다. 법이 정한대로 60일내 민주선거가 실시돼 새 지도자가 선출되면 중동 평화협상이 다시 활기를 띨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미국과 이스라엘, 아랍권이 아라파트의 죽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국경을 일방적으로 다시 정하고 철망을 치며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그를 지지하며 평화협상 중재 노력을 포기한 상태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온건파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반면 미국과 아랍권, 유럽 각국이 민주 절차를 거쳐 새 지도자를 뽑는 것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이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로 돌아온다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다. 미 대선 직후 발생한 아라파트의 사망은 중동 평화를 위한 큰 기회다. 부시가 이를 활용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긴요하다.

워싱턴포스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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