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달음 기회 놓친 미국

2004-1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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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힘을 행사할 때 근대 대통령들은 모두 한결 같이 동일한 ‘대본’을 읽었다. 미국은 자유를 신봉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바로 이러한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행동한다.
이 ‘대본’은 원래 우드로우 윌슨의 작품이다. 그러나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부시도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이용했다. 이들이 이 기본권을 옹호하는 대통령으로 자처하면서 그들의 행동은 대단한 힘을 지니게 됐다. 그리고 잘못한 책임도 유야무야 됐다. 이 슬로건에 파묻혔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주의적 슬로건이 선별적으로 집행됐다는 데 있다. 클린턴은 발칸 인종청소를 막으려 군대를 보냈지만 정작 르완다 인종학살은 외면했다. 부시는 이라크 해방을 외쳤지만 정작 수단의 학살은 모른 채 했다.
이 슬로건은 민주당이나 공화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미국만의 전유물로 아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이상주의를 종종 정책 편의상 끌어다 쓰는 경우가 있다. 윌슨이 1917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유럽에 개입하면서 이상주의를 내걸었고, 부시가 9.11 테러 이후 사용했다.
윌슨의 열렬한 지지자인 부시는 한술 더 떠 세계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게 미국의 임무라고 말할 정도다. 이러한 신념은 부시와 그 측근들로 하여금 중동에서 무언가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중동재편이 그것이다. 도덕적 갈등은 전혀 없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안중에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이 벌어진다. 좋은 예가 바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인권유린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 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는 무덤덤하다. 세계 여론은 미국이 제국주의적 모험을 벌였다고 비난하는데 반해 미국 내 정치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해방시킨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존 케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시는 재선을 발판으로 자신의 믿음을 더욱 밀어붙일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오래된 동전 같이 바래고 얇아서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별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진실한 행동이 아니다.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고 실패할 게 분명한 일이다. 이러한 점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이번 선거에서 상실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앤드류 J. 바세비치/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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