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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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선택

2004-11-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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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살면서 나는 재미있는 여러 가지 풍습을 경험하였다. 한번은 같은 학교 동료의 아들 첫돌 잔치에 초청되어 친구 집을 방문하였다. 한복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한 살난 아기는 참으로 귀여웠다. 나도 결혼하여 아들을 가지면 한복을 입히고 친지들을 초청하여 첫 생일파티를 한국식으로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손으로 만지는 물건마다 입으로 가져가며 재롱을 부렸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친구는 돌잔치 게임을 시작하였다
아마 독자들도 이 게임을 잘 알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자그마한 상에 네 가지 물건을 차례로 늘어놓았다. 첫 번째 물건은 실타래였는데 그것은 오래 산다는 의미라 하였다. 두 번째 물건은 연필이었다. 그것은 학문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세 번째로는 스푼을 놓았는데 그것은 평생 배고프지 않게 산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네 번째는 지폐였는데 그것은 돈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아기가 집는 물건에 따라 아기의 장래를 미리 엿볼 수 있다는 게임이었다. 친구의 아내가 아이를 상 앞에 데리고 와서 앉혔다. 아기는 단번에 스푼을 집어들었다. 아기의 선택에 실망한 친구의 아내는 돈을 가리키며 아기를 그쪽으로 유도하였다. 그 아기는 지금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어디선가 혹시 음식점을 경영하며 평생 배부르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여 본다.
한국에서 그 돌잔치에 참석한 지 몇 년 후에 나의 첫 아들 돌잔치를 미국에서 하였다. 친구 집에서 경험하였던 돌잔치 게임을 기억하며, 게임에 필요한 물건을 수집하였다. 나는 스푼과 연필, 그리고 지폐는 찾았는데, 실타래가 없어서 대신 망치를 제커리 앞에 놓았다.
아내는 하필이면 왜 망치를 놓느냐고 불평하였다. 혹시 아기가 망치를 집으면 평생을 노동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우려에서인지 자기 아기가 노동자가 될 수 없다며 망치를 치우게 하였다. 나는 망치 대신에 음악 테입을 놓았다. 혹시 제커리가 음악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한복을 입은 제커리는 상에 놓인 물건을 하나 하나 점검하더니 연필을 붙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연필을 선택한 아기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우리 부부는 “역시 우리 아기지” 하면서 흐뭇해하는 순간, 제커리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통통한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게임은 아들이 얼마나 영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살 된 아기에게 뾰족한 심이 달린 연필을 주었던 바보 같은 아빠를 보여준 셈이 되었다.
29년 전 돌잔치를 한 나의 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혹시 연필로 예언한 그의 장래가 적중하였는지 그렇지 않은지 궁금하지 않은가?
제커리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하여 그의 손에서 책이 떠난 적이 없다. 한번은 보이스카웃 하이킹을 갔었는데, 아들은 다른 아이들 뒤에서 책을 읽으면서 걸어갔다. 책에 얼굴을 파묻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제커리가 어렸을 적에 샤핑을 데리고 가면 우리는 으레 아이를 잡지 섹션에 놓아두고 샤핑을 하곤 하였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제케리를 찾아가면 그는 꼼짝하지 않고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하는 아이였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 그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세계 연감을 주었다. 그가 집에 남겨두고 간 교과서, 시, 공상과학 소설, 오래된 연감 등 수천권의 책들로 지금 우리 집 다락방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제커리는 자기 어머니가 노래 부르다시피 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 버클리에 있는 신학대학원에서 철학과 신학공부를 하고 있다. 학문의 길을 선택하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돌잔치에서 그가 선택한 연필이 그의 커리어 선택을 예정한 것인가?
제커리가 추구하는 학문의 길이 눈물을 흘리면서 걸어야 하는 힘든 길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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