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착에 빠진 민주주의

2004-11-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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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추악하고 치열한 대선을 치르고 있다. 모든 이가 부시와 케리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실은 공통점이 더 많다.
둘 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계속 오르는 의료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늘어나는 이민과 그에 따른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등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기를 회피했다. 물론 이 문제들에 대한 입장은 있지만 이는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나열해 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에 대해 케리는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미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얘기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에 대해 부시와 케리 모두 은퇴 연령을 올리거나 혜택을 조금이라도 깎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향후 25년 간 75%나 더 들어갈 경비를 어떻게 충당하겠다는 이야기는 없다.
오르는 의료 보험료에 대해서도 부시는 말이 없고 케리는 이를 연방 예산으로 충당하려 하고 있다. 외교 정책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다음 대통령이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는 이란 핵 문제인데 부시나 케리 모두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것이 없다.
이에 대해 둘 다 부정직하거나 정치 현실 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자기 후보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만 그렇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양 후보 모두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간에 이는 정도의 차이이지 한 쪽은 희고 다른 쪽은 검은 것은 아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토론돼야 하는 데 미국 같이 여론의 힘이 지배적인 나라에서는 어떤 정치인도 이를 거스르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은 정책을 면밀히 검토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보다는 후보의 인상을 보고 믿음이 가는 후보를 찍는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대통령도 모른다.
유권자들은 보다 신뢰가 가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만약 유권자들이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다루기를 회피한다면 정치인들도 이를 해결할 수 없고 사태는 점점 더 악화할 뿐이다. 이번 캠페인 기간 동안 부시와 케리 모두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때까지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는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진짜 문제다.

로버트 새뮤얼슨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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