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직접 대화 안된다

2004-10-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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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대통령 후보 간 토론에서 의외로 심도 있는 논의가 벌어진 것은 북한 핵 문제였다. 짐 레러 주재 하에 부시는 자신이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케리는 현 미국 정책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공박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6자 회담과 쌍무 회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에 대한 설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토론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케리는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이 추진해온 외교 정책을 망쳤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케리의 비판을 먼저 주목해보자.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고 국제 사찰단으로 하여금 연료봉을 검사하게 하는 대가로 석유를 대주기로 하고 2000년 말에는 이보다 더 포괄적인 타협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2001년 파월 국무장관은 이 회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 후 2년 동안 아무 협상이 없었다. 케리 말대로 “대화를 하지 않는 동안 연료봉이 나왔고 사찰단은 축출됐으며 이제 북한은 4~7개의 핵 폭탄을 갖고 있다.”
여기서 좀 신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 CIA는 부시 취임 전 북한이 1~2개의 핵 폭탄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고 연료봉이 플루토늄으로 재처리됐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부시가 이라크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공박한 케리의 비판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 교체를 원하는 매파와 협상을 원하는 온건파 사이의 다툼으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부시는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클린턴 행정부의 협약은 북한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하는 대신 북한은 몰래 우라늄을 농축해왔다.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외교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미국보다 북한에 더 영향력을 가진 중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케리는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가 해왔던 것처럼 쌍무 회담 방식으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케리는 자신도 중국의 영향력을 염두에 두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미국이 쌍무 회담에 응하는 순간 북한은 6자 회담에서 빠질 것이라는 부시의 예측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 개발 포기를 종용해 온 중국과 한국, 일본과 러시아는 설 자리를 잃고 미국만이 남게 된다.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국경을 열기만 해도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중국이 빠지면 미국은 살인적인 독재 정권에 주던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부시의 대북한 정책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어려운 활로를 개척하는데는 성공했다. 당파적인 이유로 이를 저버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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