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월 장관, 그때와 지금

2004-09-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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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걸프전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당시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해 미군을 파견하고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침략자에 대해 단호하고도 완벽한 승리를 거둘 것임을 장담했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은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전쟁 계획은 아주 치밀하게 작성됐으며 약 50만 명의 미군이 대거 투입됐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본보를 방문한 파월은 과거와 달리 지금의 이라크 사태에 대해 장밋빛 그림을 그리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가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고 시인했다. 당초 미국이 생각한 것보다 저항세력이 완강하다고 실토했다. 미국의 이라크 재건사업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고 했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선거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투표장에 저항세력들이 총격을 가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 이라크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우리에게 소상히 알리지 않고 있다. 그저 이라크 선거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는 발언을 할뿐이다. 이 상태로는 이라크 민주화는 그림에 떡이다.
제 1차 걸프전에서 적군을 격퇴시킨 미군은 지금 이라크 모래 속에서 헤매고 있다. 누가 적이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깜깜하다.
미군의 임무조차도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민들은 잘못된 전쟁의 폐해를 잊은 듯하다.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데이빗 할버스탬의 책 ‘The Best and the Brightest’는 여전히 읽을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이 금방 끝날 것으로 기대했었다. 막대한 전비로 경제적 타격이 엄청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전쟁 비용은 예상과 빗나갔으며 과도한 전비는 결국 인플레를 유발해 존슨 정권을 퇴출시키고 말았다.
차기 정부도 문제를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으며 급진적인 경제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일을 재연하고 있다.

밥 허버트/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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