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국의 희망 찾기

2004-09-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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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내의 각계 원로 1,500명이 시국 선언을 했다. 대한민국이 건립된 이후 각 분야에서 국가 건설에 힘을 쏟았고 이제는 노후를 조용히 보내고 있는 그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국가 장래를 걱정하며 던진 화두는 정말 심각하다. “이 나라는 친북 반미 세력에 의해 장악됐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지 1년 반, 나라가 온통 요동치고 편한 날이 단 하루가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원로들의 노성은 타당성을 갖는다. 정부는, 정권은 왜 존재하는가. 국민을 편안히 잘 살게 하고 그 연장선에서 나라가 발전하도록 하는 일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경제를 일으켜 국부를 쌓고, 안보를 튼튼히 해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때 헌법에 손을 얹고 ‘국가를 보위하고…’ 운운하는 선언을 했다. 한데 노 정권 출범 이후 중 경제는 후퇴만 했다. 실업자가 급격히 늘고 물가는 다락같이 오르고 정권을 믿지 않는 자본가들은 투자를 마다하고 소비자들은 돈주머니를 동여맸다. 그러니 공장은 문을 닫을 밖에 없고상가는 철시했다. 또 시장 바구니를 든 주부들은 청와대를 향해 옹골지게 내뱉는다. ‘과거사를 파헤친다고? 제발 그런 것 갖고 싸우지 말고 먹고살게나 해 달라.’
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급박한 외침에 노 정권은 귀를 막고 있다. 과거사를 조사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며,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야 민주 국가가 될 수 있다며, 또 개혁을 비판하는 자들은 수구반동 기득권 세력이라며. 국회 내 다수당을 만든 노 정권은 이제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과거사에서부터 앞날의 국가 개조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서 좌파 이념에 기초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그들이 추진하는 개혁의 저변에 바로 원로들이 개탄하고 경고한 ‘친북-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왜 노 정권은 국가보안법 폐기에 목을 매고 있는가. 불과 얼마 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보법의 존치를 판결로써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없애야 한다고 되받아 친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국보법 폐기를 요구하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몰리고 있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회복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추진하려 하자 김정일이 국보법 폐지부터 하라고 배를 내밀며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이어 ‘친북 정권’의 컬러를 점차 드러내고 있다는 게 사회 원로들의 탄식이다. 노 정권의 ‘친북 노선’은 그대로 ‘반미 정책’과 연결된다고 원로들은 지적했다. 여당 내 노무현 직계 세력들이 이라크 파병 반대를 결의하고 북한 인권을 규탄한 미 의회에 항의 편지를 보내고 미국보다 중국이 더 가까운 우방이라고 떠들어댄 것만 보아도 노 정권이 ‘반미적’이라는 건 이미 미국 요로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문제는 개탄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 정권은 앞으로 십 수년 더 집권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얼마 전 노 정권의 한 실세는 향후 20년도 자신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기고만장했다. 그의 말이 공연한 허풍이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노무현 진영은 지금 ‘권력의 롱런’을 향해 은밀한 청사진을 만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전교조라는 좌파 교사들이 아이들에 반미-친북 교육을 암암리에 시키고 있는 한, 반미만 외치면 양심적 애국자로 둔갑하는 왜곡된 사회 분위기가 존속하는 한, 노무현 정권 비판하면 반개혁 수구로 모는 좌파들의 강력하고 교활한 책동이 작동하는 한, 또 가진 자는 악이요 없는 자는 선이라는 이분법에 동의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경제가 좀 후퇴하더라도 분배가 우선이라는 좌파적 정책이 마치 활빈당처럼 박수를 받는 한, 노무현 정권을 계승하는 좌파 정권의 존속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용도 폐기된 좌파적 이념과 정책을 우리가 뒤늦게 따라가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소련 체제가 무너진 지 오래고 유럽의 좌파 정권이 우파 정권으로 회귀하고, 남미 좌파 정권들이 경제파탄만 불러오다 그들 역시 붕괴됐고 아직 잔명을 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민의 기아와 인권 말살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북한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5년 임기의 정권 때문에 좌파 국가로 전락한다면 이 무슨 해괴하고 낭패한 일인가.
이제 우리는 저들이 나라를 좌향좌로 끌어가려는 것을 단호히 막아서야 한다. 말로만 떠들어선 안 된다. 아주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 제 주머니 돈 몇 푼이라도 내놓고 좌파의 길을 막는 일에 보태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 연구단체도 만들어 사상적 대결도 준비하고 인터넷 전에도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이 ‘중도 우파’가 주도하는 정통 보수의 길로 회귀하도록 일어서야 한다. 말 그대로 ‘열린 보수 개혁하는 보수’만이 우리 조국의 장래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슴에 품고.

안영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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