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시운전’
2004-08-10 (화)
중고차를 구입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시운전이다. 차의 구석구석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경험 있는 운전자라면 시운전을 통해 결정적인 부분의 성능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다.
시운전의 첫 단추는 열쇠이다. 세일즈맨이 수십 개의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있어도 시운전할 차 문을 열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대통령 후보가 눈부신 학력, 타고난 체력, 탁월한 경력, 엄청난 재력을 갖추었어도 한 나라를 이끄는 데 필수인 리더십을 결여했다면 본인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나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차의 외관은 중요하다.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이니 견물생심 발동의 으뜸 요인이다. 하얀색인지 빨간색인지, 디자인이 미국풍인지 유럽풍인지, 따져볼 게 수두룩하다. 그러나 무게를 두어야 할 부분은 역시 성능이다. 하루 이틀 타고 반납할 렌터카가 아니라 수년간 애락을 함께 할 대상이라면 차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대통령도 일단 뽑으면 싫으나 좋으나 4년간 숙명의 동행을 피할 수 없다.
요모조모 꼼꼼히 짚어보고 소신껏 고른 차라도 문제가 툭툭 터져 나오는 법이다. 그래도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과감히 차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대통령이 맘에 안 든다고 해서 중도에 갈아치우거나 끌어내릴 수는 없다. 선거가 끝난 뒤 “잘못 골랐다”고 한들 이미 지나간 버스이다. ‘겉’에 현혹된 유권자 개개인의 ‘업’일 뿐이다.
수 차례 펑크가 나 여기저기 땜질한 것을 감추기 위해 번쩍번쩍하는 광택을 낸 타이어로 긴 여행을 떠나려면 찜찜하다. 현란한 수사와 교묘한 어법으로 환심을 사더라도 약속한 말들을 실행에 옮길만한 능력이 없는 대통령과의 ‘동반여행’은 생각만 해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선 후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의 성찬’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감칠 맛 나는 미래’는 멀어진다.
승차감을 최우선으로 꼽는 운전자가 시운전을 위해 자리에 앉자 쿠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여러 차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당연히 그 차를 골랐다. 그런데 장거리를 달리다보니 노면 상태에 따라 쿠션이 당초 생각과 달리 엉망이었다. 좌석 쿠션만 염두에 두었지 노면 충격흡수 장치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누가 그럴만한 지도자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 부시는 대통령직엔 구면이다. 케리는 대통령에는 첫 도전이지만 정치인으로 뼈가 굵었다. 두 후보 모두 신인이 아니다. 차로 말하면 중고차이다. 그러니 그들의 정치역정을 반추해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과거는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다.
차는 쾌청한 날씨에 반듯한 도로에서만 주행하는 게 아니다. 비나 눈이 올 때, 강풍이 불 때, 갑자기 핸들을 틀 때가 있다. 실제 사고가 날 때도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적응력이 뛰어나고 막상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차가 최고이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떠한 자세와 정책으로 돌파할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 병아리 채가는 매를 사로잡을 것 같은 기세였다가, 잔치 상에 모여든 벌 몇 마리를 보고 부동자세를 취하는 후보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무능한 대통령의 뒤치다꺼리에 불쾌지수만 올라간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부시와 케리 후보를 각각 지원하는 한인 정치단체들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금모금, 전화유세, 편지발송, 이벤트성 유권자 등록운동 등 가용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채비이다. 아직 특정 후보를 정하지 않은 부동층에 대한 공세가 거세질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어차피 각 후보의 치어리더이다. 복싱 링 위에 올라 선 자기편 선수를 위해 환호하는 박수부대이다. 지지 후보를 치켜세우고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는 게 관행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유권자들의 망설임은 투표 당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표심은 상당기간 이리저리 떠다닐 것이다.
그러나 포인트는 명료하다. 후보들의 자질을 하나 하나 ‘시운전’해보는 것이다. ‘겉’이 아니라 ‘속’을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bong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