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시에는 구관이 명관

2004-08-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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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0월23일 선거 전 특집을 위해 뉴스위크는 전국의 118명의 정치 담당 기자들로 패널을 구성, 프랭클린 D. 루즈벨트와 토마스 E. 듀이 중 누가 이길 지를 전망하게 했다. 결론은 듀이가 19개주에서 승리, 총 232개의 선거인단 표를 얻는 반면 FDR은 25개주에서 승리하지만 선거인단 표는 230개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1월7일 밤 전문가들은 망신을 당했다. 루즈벨트가 432개 표를 얻어서 99표를 얻은 듀이를 물리치고 유례에 없는 4선을 차지했다. 기자들은 전시의 현직 대통령 이점을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지지부진한 전쟁 결과로 재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도 결국 선거에 이긴 케이스들이 꽤 된다. 부시 대통령이 위안으로 삼을 만한 역사적 사실이다. 더 나아가 부시는 11월2일 선거 전에 뭔가 극적인 군사적 행운이 찾아 들어서 전쟁에 회의적이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기를 바랄 만도 하다. 그런 일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역사적으로 전시의 대통령은 4명중 3명 꼴로 재선에 성공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경우 1944년 가을은 대단히 깊은 좌절의 시기였다. 6월의 상륙작전 성공과 8월의 파리 해방에 이어 연합군이 독일 국경에 도착했을 때 나치의 저항은 강경했다. 9월 말 미영 연합군은 라인강 하류 교량 점령에 실패했다.
루즈벨트의 건강 역시 캠페인 이슈로 거론되었다. 그런데도 루즈벨트는 가볍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시에는 승리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해도 결국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는 패턴을 계승했다.
그것은 1812년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패턴이었다. 당시 미국의 육군과 해군은 대영제국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뉴잉글랜드에서는 전쟁 자체에 회의적이었고, 동북부 주들이 탈퇴할 것은 거의 확실했다. 그럼에도 매디슨은 재선에 승리했다. 10월에 일어난 예상치도 못했던 깜짝사건 덕분이었다. 1812년 10월 수개월의 음울한 소식들을 깨고 미국 함대가 영국 함대를 패퇴시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1864년 11월 링컨 대통령의 상황도 1944년 루즈벨트의 상황과 아주 흡사했다. 링컨 자신이 패배할 것으로 믿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링컨은 재선되었다.
전시에는 미국 유권자들이 현직 대통령을 밀어주는 전통에 예외가 있다면 1968년 린든 B. 존슨의 경우였다. 하지만 그때는 국민들이 마음을 정하기 전에 존슨 자신이 먼저 포기를 해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916년 재선을 노리던 우드로 윌슨 진영은 비공식적 캠페인 노래를 퍼트렸다. 강 한가운데서는 절대로 말을 바꾸지 말라는 노래였다. 국가적 중대 시기에 최고 사령관을 버리고 새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번 대선에서 부시에게 힘을 주고 민주당 측에는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한다. 케리는 유권자들에게 부시가 링컨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시켜야 할 것이다.

로스 베이커/USA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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